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강낭콩 키우기" 키트 얘기가 나왔다. 강낭콩..하면 또 할말많은 나이지만 그냥 줄기가 너무 길어져서 지지대를 받쳐주었고, 나중에는 감당이 안되서 옆에 빈화분까지 지지대를 세워서 걸쳐줬다는 얘기까지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를 보는 눈빛들이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묻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꺼낸 얘기 꽃봉오리가 생겼었는데 피지는 못하더라, 이파리에 총채벌레가 너무 많이 생겨서 수확하고 바로 뽑아버렸다, 꼬투리가 5-6개 열렸는데 다 콩이 들어있던건 아니더라 까지 했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지인한명이 "진짜 식물 잘 키우나보다~"라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아니라고 하고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문득, 예의상 아니라고 했지만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금손이라 우리집 베란다에서 식물이 잘 자라는게 아니라, 정말 고맙게도 녀석들이 알아서 발아를 하고 본잎을 내밀고 꽃봉오리까지 만든 다음 열매로 마무리를 짓는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은 지금도 우리집에서 일어나고있다.
저번글에서 너무 다닥다닥 발아한 새싹들을 옮기겠다고 선언하고, 진짜 작업에 착수했다. 아직 새싹이니까 뿌리가 그렇게 깊지 않겠거니 생각해서 1년째 쓰고 있는 베란다 텃밭 전용 일회용 숟가락으로 살짝 흙을 판다음 뽑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뿌리가 뚝!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 아이는 "마루타"로 생을 마감했다. 가슴이 철렁한 나는 심호흡을 다시 했다. 실수는 한번이면 족하다. 거의 스치로폼 바닥에 숟가락이 달랑말랑 한 정도로 흙을 파니 깊숙히 묻혀있던 뿌리까지 다 보였고, 그렇게 첫번째 이사가 성공을 했다.
이게 무슨 이사를 했다는 거냐?라고 하신다면 가운데 두 뭉터기가 위, 아래 큰 뭉터기에서 그나마 분리된 모습이다. 겨우 저렇게 이사하는데 어찌나 가슴을 졸였던지. 잔뿌리 안끊기게 하려고 숟가락으로 어느정도 팠다 싶으면 살짝 뽑아봤다가 안나오면 다시 숟가락으로 파고를 반복한 결과 이루어낸 나만의 쾌거이다. 그리고 분리하며 발견한 예쁜 모습들!
본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늘 처음에 씨앗을 파종하고나서는 "발아를 할까?"하는 걱정이 드는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새싹이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가 "본잎이 나와야하는데.."하는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항상 새싹들은 배신을 하는 경우가 없다. 늘 힘껏 자라 본잎을 보여준다. 아직 사실 본잎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작은 이파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이건 아마 씨앗으로 발아 시켜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묘목은 이 과정을 다 거쳐 어느정도 성장이 된 모습이니까.
본잎을 봐서 그런지 더 걱정이 되었다. 나름대로 뿌리 손상안시키고 분리조치를 하긴 했는데 갑자기 이동시켜서 시들어버리면 어쩌지...그래서 매일매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역시 새싹들은 날 배신하지 않았다. 분리조치(?)된 곳에서 잘 뿌리내려 싱싱한 모습을 늘 보여주었다. 너무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나는 또 한번의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 솎아줘야겠다. 수많은 새싹들 중에 모두가 다 본잎을 내민것이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본잎을 보이지 않은 새싹들은 과감히 뽑아버리기로 결정했다. 결정하자마자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하나 하나 뽑아버릴 때마다, 녀석들도 힘겹게 흙을 뚫고 나온 생명체인데..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다 솎아내니 처음 발아했을 때보다 거의 절반은 사라진듯한 느낌이었다. 허전한 마음에 자리를 뜰 수가 없어 한참 살아남은(?)새싹들을 바라보던 중,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고 만다. 다시 한번 분리조치를 하기로 한것. 이미 한번 해봤기에 이번에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작업이 이루어졌다.
애초에 파종한 스치로폼 화분이 너무 작아서 두번의 이사(?)에도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나는 너무 만족했다. 그리고 소망했다. 이번에도 다 살아남기를.
이 예쁜 아이들에게 나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새싹이 너무 예뻐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생각도 들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갓 태어난 생명체들은 다 이쁘구나, 크면서도 이쁘면 좋은데, 뭐가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그렇지 않은 모습에 더 가깝게 만들어가는 것일까.
번외적인 이야기로 현재 텃밭에는 상추씨와 당근씨를 뿌려놓은 상태다. 어제 가서 보니 작은 새싹들이 보이긴 하는데 과연 잘자랄런지.. 스치로폼 화분에서 잘 자라고 있는 요 녀석들이 지금 보다 한 두배정도 크면 통채로 텃밭에 옮겨심을 계획을 갖고 있다. 그냥 쉽게 화원이나 농약사에서 묘목을 사다 키우면 될것을 굳이 왜이렇게 힘든 과정을 사서 하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힘들지 않다. 약간의 걱정과 맘고생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모든과정이 즐겁다. 그리고 너무 예쁘고 기특하고 뿌듯하다. 솔직한 말로 돈이 되는것도 아닌데 즐겁지도 않으면 굳이 내가 왜 하겠는가.
녀석들의 성장을 오늘도 내일도 기대해본다.
파초청녀
커피를 사랑하고, 환경지키는것에 관심이 많으며,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댓글 2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