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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지#1.] 묘목 심기
파초청녀23. 04. 17 · 읽음 113

드디어 텃밭에 첫 생명체가 자리를 잡았다. 큰 맘먹고 텃밭 분양신청을 했음에도 이상하게 발길이 닿지 않던 텃밭. 어쩌면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너무 성급하게 분양을 받은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약간 체념의 마음이 들 때 쯤,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지인분이 상추묘목을 가지고 왔는데 심을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바로 수락을 했다.  더이상 생각을 했다가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시기를 놓쳐버릴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행동파이신 친정엄마는 바로 묘목을 가지고 우리집에 오셨고,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바로 텃밭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의 텃밭과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심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이름이 붙어있는 텃밭이기에 오며가며 들여다보기는 참 많이도 들여다보았던 텃밭. 막상 들어가서 땅을 살피니 그다지 좋은 땅은 아니었다. 하긴 좋은 땅이면 1년 임대료가 만원일리가 없지. 게다가 전에 사용하던 사람이 제대로 정리를 안하고 간 듯, 미처 정리되지 못한 다양한 작물들의 잔해와 뿌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결국 친정엄마는 "이거 밭, 분양전에 갈기는 한거라니?"라는 말과 함께 한숨을 쉬었고 나는 할말이 없었다. 하지만 땅의 상태가 이러할지라도 왔으니 심기로 한건 심어야지.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한 열흘전에 남편과 둘째아이가 텃밭에 뭐라도 심겠다고 집에 있던 당근, 상추 씨앗을 가져다가 뿌렸는데, 분명 다닥다닥 뿌리지 말고 씨앗과 씨앗사이에 공간을 두라고 했건만, 새싹이 난걸 보니 특정 지점에 왕창, 또 특정지점에 왕창 뿌렸는지 몇몇곳에만 왕창 밀집해 있던것이다. 진짜 한숨의 행렬이었다. 다 뽑아버릴까 싶어서 친정엄마께 여쭤보니 일단 내버려두라고 하셔서 그곳을 지나쳐 반대편 끝쪽부터 상추묘목과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유난히 적극적이었던 우리 딸, 할머기가 지점을 정해주면 모종삽으로 야무지게 땅을 팠다. 사실 나는 텃밭에 가자마자 한동안 베란다 텃밭으로 사라진듯한 "식물 공포증"이 되살아나 스스로 추스리느라 힘들었는데, 다행히 나를 안닮아 흙이나 식물에 거부감이 전혀 없는 우리 딸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묘목이라고 해서 조금 깊게 파야하는 줄 알았는데 친정엄마가 말씀하시길 뿌리가 묻힐정도만 파면 된다고 하셨고, 그 깊이가 딱 우리 딸이 팔 수 있는 깊이였다. 땅을 팠으니 이제 심어야지.

파는건 삽으로 팠는데 뿌리를 그 구멍에 넣고 다시 삽으로 흙을 채우려니 쉽지 않았다. 결국 손으로 해야했는데, 친정엄마가 손으로 흙을 끌어모아 뿌리를 묻고 또 다시 손으로 두드려 마무리 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땅의 상태가 조금 깨끗했으면 괜찮았을까? 뭐라 확답할 수는 없지만 여기저기 잡초와 더불어 미처 치워지지 못한 여러 식물의 잔해 때문에 정말 온 몸이 수축되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 딸, 할머니가 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삽을 내려놓고 손으로 착착 흙을 덮고 고정까지 확실하게 시켜주는데 너무 감탄스러웠다. 아마 이 날, 상추묘목의 절반은 우리 딸이 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 배에서 나왔어도 다 똑같지는 않은 법. 우리아들에게도 한번 심어보라고 했더니..

 

일단 삽으로 구멍을 파는건 성공!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할머니가 묘목을 구멍에 넣고 흙을 덮어주랬더니 기어코 손이 아닌 삽으로 퍽퍽 하는 모습을 보이는것이 아닌가. 이녀석, 손에 묻히는게 싫었구나. 결국 구멍만 파고 심는건 다 할머니가 했다. 친정엄마는 나에게 심어볼것을 권했지만 정말 내키지 않았다. 이상했다. 베란다에 있는 애들은 내가 내 손으로 다 옮겨주고 솎아주고 하는데 텃밭에서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피하면 앞으로 텃밭에 더 정을 못붙일것 같아서 심호흡한번 깊게 하고 묘목을 심었다. 딱 하나.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리고 막상 심어보니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이 조금 풀리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래 이렇게 시작하는거지.

 

총 10개의 상추묘목을 심었다. 사진 속 짝이 없는 상추 앞에는 싹이난 감자를 심었는데 워낙 싹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짧지만 강렬한 상추&감자 심기가 완료되었다. 한참 심고 있는데 딸내미 친구가 지나가서 인사도하고, 모르는 이들의 시선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아파트 한가운데 조성된 텃밭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이들이 의식해서 창피하다고 안한다고 하면 어쩌나..싶었는데 내 걱정이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묘목을 심은 다음날 타이밍 좋게 비가 왔다. 상추와 감자가 무럭무럭 자라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만큼 내 마음도 쑥쑥 자라서 베란다텃밭 만큼이나 자주자주 들여볼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심었으면 인증샷이 빠질 수 없지.

베란다 텃밭이나 아파트텃밭이나 항상 텃밭관련해서 무한한 지원을 해주시는 친정엄마께 감사한 마음이다. 베란다 텃밭 만큼이나 아파트텃밭에서도 수확이 잘 이루어진다면 가장먼저 친정엄마와 그 기쁨을 나누고 싶다. 


드디어 텃밭일지가 시작되었습니다. 서툴고 버벅거리겠지만 그래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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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청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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