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유어 파더
맨홀22. 09. 25 · 읽음 144

번잡한 시가지 사이로 뻗은 사방의 아스팔트 위로 한낮의 폭염이 뜨겁게 피어오른다.

앞에 앉아있던 노신사의 커피잔 위로도 옅은 김이 피어오른다.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주름진 손 위에 얹힌 고급형 시계가 창가로 스며든 빛에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이제야 네 앞에 나타나서."

그는 애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들었지. 이젠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이 아비가 너 힘들지 않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순간, 억눌려있던 나의 서러움은 눈물로 터져나왔다.

 

꺼이꺼이, 울다가 눈을 떴는데...

반지하 창문으로 기어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기어이 아침임을 알리고 있었다. 

 

(희미하게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상상마당에서 주최하는 <열 줄 소설>에 응모했다가 보기 좋게 낙선했던 글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허텃함의 효과를 위해 추가해 봤어요.

 

요즘 [작은 아씨들]이라는 드라마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난이라는 소재를 징그러울 정도로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극 중에 누군가 묻습니다. 

"정말 돈이 많으면 무얼 하고 싶어요?"라고.

자신은 샷시가 잘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안전하게 동생들과 살고 싶다고 말했죠.

이 대답에서 서민층에게 있어 돈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제일 우선순위가 주거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어제 유튜브에서 지난 태풍때 쏟아졌던 비로 인해 반지하방이 물로 가득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시민을 동네 주민들이 구조하는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피해가 극심했던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뉴스는 들었지만, 실제 구조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숨이 막히고 마침내 작은 창을 통해 사람의 머리가 보였을땐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그 눈물의 의미는 아마도 미안함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상에 살고 있다는 저의 안락함이, 나만 피해 없으면 그만이지라는 무심함에 대한 죄책감이었을 겁니다. 그리곤 열 줄소설에 응모했던 저 글이 떠올랐어요. 

 

어딘가에서 재벌 아빠가 갑자기 나타나 "아임 유어 파더."라고 하면 좋겠다라는 말을 우스개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생각을 떠올리며 모든게 꿈이었음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눈을 떴을때 반지하 작은 창문 사이로 빛이 새어들어오는 것을 상상했거든요. 그렇게 글을 썼었는데... 어제 유튜브 영상을 보고나니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기 쉽습니다. 

지금 이 사회는 돈이 돈을 버는 구조니까요. 

 

누군가는 돈이 차고 넘쳐서 우동을 먹기 위해 일본을 다녀오고, 누군가는 반지하방에 물이 차고 넘쳐서 생사를 오갑니다. 어느 누구든지 최소한의 주거는 보장되는 사회. 이런 사회가 저 열 줄 소설처럼 한낱 꿈에 불과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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