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잡고 텃밭에 갔다. 어느덧 너무도 풍성해진 우리 텃밭. 오이, 가지, 상추, 방울토마토, 깻잎, 쑥갓, 강낭콩, 얼갈이배추, 겨자배추, 고추가 아주 쑥쑥 크고 있다. 그리고 풀도 덩달아 엄청 무성한건 안비밀. 언제 날 잡고 풀 뽑으러 갈 예정이다. 항상 텃밭에 가면 우선 상추부터 뜯기 시작한다. 언젠가 그로로 메이커 최글루님 글에서 "이제 상추는 좀 징그러운걸요."라는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진짜 맞는말이다. 상추모종을 10개를 심었는데 갈때마다 어찌나 무성하고, 잘 크는지.. 이미 하나는 키가 한 100cm는 되서 꽃이 피기 직전이다. 친정엄마가 씨받고 뽑아버리랬는데 굳이 씨를 받을 필요성은 느끼지 못해 조만간 뽑아버릴 예정이다. 상추를 다 뜯고나니 배추가 눈에 밟힌다. 저번에 그렇게 앙상하게 만들어놨건만 또 우리 아이들 얼굴만한 잎사귀를 키워논 녀석. 그런데 어찌나 벌레가 많이 먹었는지 구멍이 숭숭뚫려서..볼때마다 너무 속상하다. 마음같아서는 농약을 삭 뿌리고 싶은데 처음텃밭을 분양받을때 친환경 텃밭이라 농약사용을 금지한다는 안내를 받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중이다.(친환경적으로 벌레를 잡을 수 있는 법 아시는 분! 저좀 도와주세요. ㅜㅜ) 여튼 또 앙상해질때까지 수확했다.
그리고 오늘은 고추도 수확했다. 첫 수확이라 두근두근, 내가 아는 오이고추는 조금 더 살이 통통히 올라야하지만 이미 키가 클만큼 커 보여서 친정엄마와 함께 수확했다. 그리고 먹어본 결과 완전 안매운 오이고추는 아니고, 살짝 매콤함이 느껴지는 고추였다. 고추장에 찍어먹기 딱 좋은 맛! 고추가 더 주렁주렁 달렸으면 좋겠다. 이어서 쑥갓도 수확하고, 우리 아들이 씨앗을 부어버린곳에서 자란 적상추도 수확하고 깻잎도 몇장 뜯었다.
깻잎..저번주만해도 멀쩡했던 깻잎은 일주일새에 벌레의 습격을 받았다. 완전 구멍이 뽕뽕 뚫려서 벌레먹은것들은 다 뜯어버리고 싶었는데, 친정엄마가 일단 오늘은 수확물이 너무 많으니 다음에 하자고 해서 다음엔 깻잎 구하기 대작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으....풀도 뽑아야하고, 깻잎도 다 뜯어야하고, 다음에 텃밭에 갈때도 아주 작심을 해야겠다. 여튼 그리하여 수확한 오늘의 수확물은...
배추는 빼고 찍은 사진이다. 배추의 상태는 너무 처참해서였는지, 이 사진을 친정엄마가 찍으셨는데 배추만 쏙 빼고 찍으셨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배추는 농약을 한번 뿌려서 그런지 벌레하나 안먹고 아주 깨끗한데..텃밭은..하...진짜 대책이 필요하다. 저 수확물들은 다 친정엄마가 가지고 가셨다. 박박 씻어서 상추김치를 담그신다는데, 기대반 걱정반이다.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오늘의 새로운 발견! 드디어 오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난 오이꽃을 살면서 한번도 못봤는데 오늘 아주 제대로 봤다. 그리고 늘 마트에서 큰 오이만 보다가 이제 열리기 시작한 애기오이를 보며 너무너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모든 생명체의 새끼는 다 이쁘고 귀엽다니까!
일단 사진찍은건 세개인데, 사실 더 달렸다. 세심하게 관찰해서 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만 어마무시한 상추와 배추를 수확하느라 진이 빠져서 가장 예쁜꽃들만 찍어보았다. 친정엄마는 지금 달린 오이들이 다 크면 정말 엄청나겠다며 기대감을 비치셨고, 나 역시 기대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어마무시하게 크는 상추와 배추, 그리고 깻잎을 보며..오이도 저렇게 많이 달리면 어쩌지..하는 생각. 하지만 곧 여름이니까 이영자님처럼 시원하게 깎아먹기도 하고 오이 팩도 하고 등등..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친정엄마가 계시니까! 일단 걱정은 덮어두고 잘 크기를 바라야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발견은 강낭콩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서 강낭콩을 수확한 경험이 있다. 너무 잘커서 기뻤고, 하지만 너무 벌레가 많이 생겨서 속상했고, 꽃봉오리가 많이 생겼는데 결국 수정이 안되서 피지 못한채로 시들어서 슬펐고, 하지만 꼬투리는 생겨서 끝내 수확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어 행복했던 나의 강낭콩 연대기. 강낭콩이 열리기 시작하자 급격하게 죽어가던 녀석을 보고 마음이 며칠간 참 쓰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딸이 처음 강낭콩 키트를 가져왔을 때 좀 망설였다. 선뜻 심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벌레였다. 이상하게 강낭콩은 벌레가 너무 잘생겼다. 괜히 잘 크고 있는 우리 배추들한테 피해가 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친정엄마가 오신 어느날..그들은 심겨졌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그들은..엄청 잘크기 시작했다.
오마이갓. 정작 심은 딸은 관심이 없고(첫 강낭콩때는 엄청 좋아했다. 수확을 몇알 못했는데도 기뻐했고 밥에 넣어주니 자기가 다 먹었다.) 나는 걱정이 날로날로 커져갔다. 그런데 식집사 본능을 어쩔 수 없었는지 녀석들이 다 이파리를 활짝 펴자마자 이 작은 화분에서 과연 잘 클 수 있을까, 텃밭으로 옮겨야겠다...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했다. 너무 신경쓸게 많았다. 텃밭에 작물을 심고, 베란다에서 배추를 옮겨다 심고, 매번 물을 주러 나가고, 수확하고..또 수확하고..수확하고..계속 수확하고..물주고..안그래도 정신없는 워킹맘이 집 안팎으로 텃밭을 꾸리느라 정신이 나갈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로만 "어떡하지 어떡하지"하기를 몇주. 간만에 들여다본 강낭콩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세상에 키는 콩알만한게(콩알만하지는 않지만, 그전에 키웠던 강낭콩에 비하면 콩알만하다는 얘기) 벌써 꽃망울이 진것이 아닌가! 안돼!!!!!!!!!!!!!! 뿌리가 깊게 내리지를 못하니 녀석이 벌써 나이가 들어버렸구나..하는 생각에 남편을 급히 소환했다. 그리고 비가오던 연휴에 녀석들은 남편덕에 텃밭으로 옮겨졌다. 그렇지만 강낭콩들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간이 배추 옆자리밖에 없어서 거기다 심었더니 엄청난 기세로 자라는 배추에게 밀리기 시작한것. 내가 열심히 수확해주었지만, 오늘도 역시 밀리는 중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아주 배추를 작정하고 뜯어주었다. 배추녀석..벌레만 안먹으면 매번 뜯어서 누구라도 줄텐데, 너무 벌레가 많이 먹어서(옆 텃밭의 지인에 의하면 어디선가 애벌레가 출몰했다고 함. 아마 배추흰나비 애벌레인듯..하..잡아 죽일수도 없고..그래 같이 먹고 살자 애벌레야. 식물을 키우면서 모든걸 초탈해가는 파초청녀) 늘 우리 가족의 일용한 식량이 되는 녀석.
여튼 배추를 신나게 뜯고 강낭콩을 바로 세워주고 살펴보니. 이미 먹은 나이를 어쩔수 없었는지 꼬투리가 열리기 시작했다. 꼬투리가 열리기 시작하면 급격하게 잎들이 시드는걸 알았지만, 그래도 역시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수확이 예정되어 기쁜 마음과 식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하는 속상한 마음. 식집사를 하는 동안은 내가 견뎌야할 양가감정일 듯 하다.
강낭콩꼬투리 역시 저렇게 하나만 달린건 아니다. 꽤 많이 달렸지만 이미 지친 파초청녀는 더이상 찍을 힘이 없었다는 비보... 그리고 강낭콩 뒤로 보이는 상추들은 배추를 감싸고 있는 녀석들인데, 텃밭 초기에 우리 아들이 씨앗을 뿌리겠다며 씨앗 한 봉을 가지고 나가 일렬종대로 다 부어버려서 자란 녀석들이다. 한봉을 다 부어버렸는데 진짜 다 발아를 해버렸는지 한 60cm정도 길이로 두줄이 빡빡하게 자라고 있다. 이 녀석들이 이렇게 잘 자랄줄 모르고 상추 묘종을 10개나 심었는데..과유불급이다. (ㅠㅠ) 그나마 다행인건 상추들은 벌레가 안먹어서 이 상추도(적상추) 저 상추도(상추묘종-담배상추) 다 멀쩡하다는것. 적상추는 그리고 어찌나 잎이 연한지 그냥 씹어먹어도 입에서 살살 녹는다. 언제 또 날잡아서 적상추들을 다 수확해서 지인들에게 나눠줄까 생각중이지만..할일이 너무 많아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텃밭을 일구는건 정말 쉽지 않다. 가끔은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기도 하지만 결국은 가서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것이 텃밭이다. 녀석들의 성장으로 엄청난 수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만큼의 소비가 되지 않아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할일이 너무 많아 부담스럽기도 하지만..그래도 하나 명확한건 식물을 키우면서 인생을 배운다는것이다. 겸손한 마음도 가지게 되었고, 오랜시간 나를 괴롭힌 식물 공포증도 조금씩 극복하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식물공포증은 완전히 극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은 진저리가 쳐지니까. 하지만 그러기에 더 의미있지 않을까. 나는 온몸으로 결핍을 원동력으로 삼아 삶을 확장될 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문득 내년에도 텃밭을 신청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파초청녀
커피를 사랑하고, 환경지키는것에 관심이 많으며,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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