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리가 네개보다 많거나 아예 없다던지,
털이 없고 매끈하거나 딱딱한 존재와
가까이 하는 것을 몹시 극혐합니다
예로들면 곤충류, 파충류, 양서류 뭐 이런 부류가 있군요
지금껏 키워본 반려 친구들도 대부분
식물이거나 개, 고양이 정도이고
구피와 금붕어 정도는 어항속에 있으니
직접 닿을 일이 없고 크기도 자그마해서
그나마 용납됐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아까 언급한 세 종류의 존재들,
특히 파충류는 저와 전혀 인연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정작 저는 뱀띠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밖에 없는 지역으로 와서 결혼하고 임신해서 혼자 집을 지키게 되면서
남편이 제안을 해왔습니다
본인이 학창시절에 거북이를 키운 적이 있는데
시끄럽지도 않고 어항 속에서만 지내서
꽤 키울만 했다는 겁니다
그 말에 혹해버린 저는 당장 거북이를 사러 가기로 했습니다
거북이를 사러가기 전날 밤,
거북이의 종류가 '페닌슐라쿠터'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아이들은 주로 무얼 먹는지,
어떤 것들을 조심해줘야하는지 등등
검색을 통해서 알아볼수있는 모든 것을 수집해서 익혀보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태어난지 3개월 되었다는
아가 거북이 두마리와의 공생을 시작했습니다
오백원 동전보다 약간 큰 크기에
짤막한 네개의 다리
앙증맞은 꼬리(여기가 완전 매력 포인트입니다!!)
꿈뻑꿈뻑 동그란 눈
거북이스러운 문양의 등껍질 등등은
순식간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자세히 보면
등껍질이 좀더 진한 녀석이 샤샤,
좀더 밝은색이 슈슈 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반수생동물인 거북이는
물과 물바깥에서 동시에 살아갈수있는데요
잠시 거실 바닥에 내려놓으면
챱챱챱챱 하고 발소리를 내면서
아장아장 기어가는 모습으로
저를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햇빛이 내리쬐는 낮시간대에는
마치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크고 넙적한 돌 위에 엉금엉금 기어올라와
등껍질을 말리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입니다
저 치명적인 뒷태와
꼬랑지 좀 봐주세요 제발ㅜㅜㅜㅜㅜㅜ
하지만 한달이 지나고,
평소에 잘 먹지도 않고
돌 위에서 거의 낮잠만 자던 슈슈는
결국 더이상 움직임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햇빛이 잘 드는 집 앞 화단에 슈슈를 묻어주고 온 우리는
홀로 남은 샤샤의 새로운 동반자를 다시 들이는 것을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아무래도 물적응을 못해서 슈슈가 가버린듯 했고
혹시나 새로운 친구를 들였다가
순딩이 샤샤가 당하고 살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의 슈슈는
생전에 샤샤가 근처에 다가오기만 해도
입질을 하며 공격하며 쫓아내곤 했거든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잘 먹고 수영을 좋아하는 샤샤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런 샤샤가 너무 외로워보였던 우리는
결국 한마리를 더 입양해오기로 했습니다
새로온 아이의 이름은 슈슈의 이름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얼추 덩치가 커진 샤샤가
아직 자그마한 새 친구 슈슈를
물 속에서 일부러 밟고 있거나 밀쳐내는 등
소위 텃세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샤샤는 더이상 먹이경쟁할일 없는 어항 속에서나름대로 만족하고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새로운 경쟁자가 생겼으니
더이상 순딩이 타이틀을 달고있지 않기로 한듯했습니다
불행하게도
몇 달 지나지 않아
샤샤는 또다시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샤샤의 반응이 좀 달랐습니다
첫번째 슈슈를 보냈을때엔
평소와 다른 느낌이 안들 정도로
잘 먹고 잘 놀던 샤샤가
두번째 슈슈가 사라지고난 뒤에는
한동안 먹이도 잘 먹지 않고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마치
우울증에 걸린 것 처럼요
거북이도 우리 사람들처럼
감정을 느끼는 존재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시 새로운 친구를 데려올까 싶었지만
샤샤는 이미 너무 많이 커버렸고,
크기가 비슷한 거북이를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상당한데다가
큼직한 거북이 두마리를 키우려면
지금의 두 배 이상 큰 어항이 필요했고
그럼 거실에는 둘만한 곳이 없어져서
베란다로 내보내야 했습니다
식물은 그렇다쳐도
만약 베란다로 내보내면
아마 하루에 한두번 정도
먹이 줄때에나 보게될것 같아서
더욱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끼리 이러쿵 저러쿵 고민하는 동안
샤샤는 다시 예전의 먹성을 되찾았고
또 열심히 수영도 하고 광합성도 하며
다시 원래의 깨발랄함을 되찾았습니다
아마 샤샤 나름대로 애도시간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샤샤는 일년만에
성인남성의 손바닥보다 훨씬 커져버렸습니다
저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거북이는 파충류였다는 것을요
어항 대청소와 샤샤 목욕은 2-3일에 한번씩 해줘야하는데요
겁쟁이 쫄보인 저는
더이상 거대한 샤샤를 만질수 없습니다
남편도 최근들어 샤샤 힘이 너무 세져서
이젠 더이상 한손으로 붙잡기 힘들 정도라고 하네요
샤샤는 어항 속에서 가장 큰 돌보다
몸집이 더 켜졌지만
꿋꿋하게 매일 낮시간이 되면
광합성 타임을 즐기기 위해서
미끄럽고 좁아진 돌위로
낑낑대며 올라갑니다
그러다 종종 미끄러져서 풍덩하고 빠지는 소리도 곧잘 들려옵니다
어항 바로 옆이 쇼파인데요
덕분에 쇼파에 물이 튀길까봐 쇼파 위에 수건을 살짝 덮어둬야 합니다
어느 정도 크면
먹이를 2-3일에 한번 정도로 소량만 먹고
거의 움직임이 없을거라고고곳
수족관 사장님이 알려주셨건만
샤샤는 여전히 먹성도 좋고
수영도 좋아하고
광합성 바위 오르내리기도 좋아라합니다
지금은 제가 전담해서 먹이를 챙겨주고 있지만
몇년 후면 우리 꼬맹이가
샤샤 형아의 맘마를 챙겨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겁니다
묵묵히 우리 가족의 곁에서
가만히 눈도 마주쳐주기도 하고
아기때부터 키워와서 그런가
아직도 가끔보면 어린애 같은 느낌이 드는
우리 샤샤와 공생하는,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URang
취미가 직업이 되어버린 식집사이자 식물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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