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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키운다고? 새우요, 새우! (1편)
세찬23. 06. 14 · 읽음 165

뭘 키운다고? 새우???

네, 새우요. 새우.

 

처음 이 세계를 소개해 준 직장 동료에게 제가 보인 반응도, 이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후 남들이 제게 보였던 반응도 똑같았습니다. 횟집 수족관에서나 볼 법한 새우를 어떻게 집에서 키워? 그러게요. 새우를 집에서도 키울 수가 있더라고요. 

 

시작은 직장 동료의 제안 이었습니다. 혼자 살면서 회사 다니느라 온종일 집을 비우는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강아지를 좋아해도 반려견을 키우면 안된다는 자기 다짐이자 푸념을 들었던 겁니다.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거나, 목욕을 시켜줘야 한다거나, 털을 빗겨 줘야 한다거나, 병원에 데려가서 건강 검진을 시켜줄 필요가 없는 동물이 있다는 거였죠. 사람 손을 타지 않는 동물 말입니다. 

 

체리새우. 평생 수조도 가져본 적 없던 제게 그 흔한 금붕어도 아니고 새우라니요. 몹시 낯설었지만, 포털에 검색만 해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체리 새우'의 네이버 쇼핑 검색 결과가 3천개가 넘었거든요. 아무리 미물이어도 살아 있는 생명체를 온라인 '쇼핑'으로 구매해서 '택배'로 받는다는게 영 꺼림칙 했습니다. 다행히도 동네 대형 마트에서도 체리 새우를 분양하고 있어서 물과 함께 이동해야 하는 새우를 택배 상자에 넣어 보내는 비인간적, 아니아니, 비새우적 참사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당 2천원. 식탁에 올라갈 녀석이라 생각하면 비싸고, 반려 동물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이 생명에게 미안한 가격. 한참이 지난 후에야 마트에서 사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반려새우를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시작은 너무 무지했습니다.

 

(첫번째 수조에서 새우들이 노는 모습. 작아서 안 보이나요? 사랑하면 보입니다.)

 

인간의 애정 따위 갈구하지 않는 녀석들과 친밀감이라는게 생기긴 하는 걸까? 놀랍게도 아주 강한 애정이 생긴다는걸 알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새우가 수영하는 모습 보신적 있으신가요?  그 작은 몸으로 얼마나 아름답고 유려하게 헤엄을 치는지. 동네 수영장 상급반에 다니며 나름 '수영 부심'이 있는 저도 감탄할 정도 였습니다. 그 고요하고도 날랜 유영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저 멍하니 수조를 바라만 보는 날이 많아졌는데, 그 세계에선 이걸 '물멍'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물멍 때리는 시간은 저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어 갔습니다.

(새우 폭번. 수조가 어느덧 새우 어린이집 수준)

 

 

새우랑 함께 사는데 따르는 고민과 어려움 몇 가지를 소개 하자면 이렇습니다.

 

1. 정확히 몇 마리와 함께 사는지 모르겠다.

반려 새우를 키우며 자주 듣는 질문이 "몇 마리 키워?"라는 질문인데, 대답이 좀 곤란합니다. 처음 새우를 데려올때는 다섯 마리였는데, 어느 날 건강한 새우 한마리가 포란을 하더니 새끼들이 우르르 탄생 했습니다. 번식 철이었는지 다른 산모가 또 출산을 했고요. 사람 손톱 보다 작은 녀석들이 이리 저리 헤엄치며 때로는 수초 뒤로 때로는 수조 여과기 밑으로 숨기도 해서 녀석들의 숫자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출석 체크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세어 보았는데, 어제는 스물 다섯 마리였다가 그 다음날은 서른 마리 였다가, 또 그 다음날을 스물 여덟마리... 어느 순간, 몇 마리든 잘 살면됐지 뭐, 라고 카운팅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2. 이름을 지어주기도 부르기도 곤란하다.

몇 마리인지 알기도 어렵고, 새우들의 생김새도 거의 똑같다 보니 이름을 지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빨간 녀석은 새우깡, 노란 녀석은 고구마깡...이렇게 '깡' 돌림자를 써서 귀여운 이름을 지어 주고 싶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3. 유투브 알고리즘이 나를 괴롭힌다.

새우를 키우는 것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려고 유투브 검색을 몇번 했더니, 저의 관심사를 귀신같이 알아차린 유투브가 새우 관련 영상을 추천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영상이 '집에서 만드는 새우 감바스', '백선생 버터갈릭 새우구이의 비밀'...키우는 사람보다 먹는 사람이 더 많은건 알겠지만, 그래도 굳이 요리법 추천씩이나;;;;

 

4. 임시 보호 맡기기가 매우매우매우 어렵다.

보름 정도의 일정으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새우 밥 챙겨 주면서 돌봐 줄 사람이 필요 했습니다. 하필 출장 일정이 한겨울이었고요. 새우들이 물온도에 매우 민감해서 난방이 되지 않는 곳에서 보름을 보내면 떼죽음을 면치 못할게 뻔했습니다. 결국 어머니 댁에 새우를 임시 보호 맡겨야 했는데, 이게 또 수월치가 않았습니다. 새우는 강아지와 고양이 처럼 품에 쏙 안고 이동시킬 수가 없거든요. 물이 반드시 함께 이동을 해야 하는 거죠. 물 온도가 너무 높아도 폐사, 너무 낮아도 폐사. 염소 때문에 금방 받은 수돗물에 풀어 놓아도 폐사. 임시 보호처로 사용할 수조를 추가 구매하고, 수돗물을 받아서  염소를 날리고, 히터를 넣어서 온도를 맞추고, 새우들이 살 수 있도록 PH수치를 맞추는 소위 '물잡이'를 하는 기타 등등등등등의 순서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새우 민족 대이동에만 3주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물론, 출장 후 다시 저의 집으로 돌아오는 데에도 똑같은 3주의 시간이 걸렸고요. 새우에 관심도 없는 어머니 댁에 수조와 온갖 물생활 용품을 가져다 놓아야 하는 민폐는 뭐 말 할 것도 없었고요. 

 

 

그래도 이런 정도의 고생은 이후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사소하고 귀여운 수준이었습니다. 새우는 소리 내어 짖거나 목청껏 울 줄 모르고, 꼬리를 흔들거나 나와 눈을 마주치는 행동으로 감정을 교감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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