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키운다고? 새우요, 새우! (2편)
세찬23. 06. 20 · 읽음 65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너무 몰랐던 겁니다. 새우와 함께 사는 것이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보다 결코 만만하고 쉬운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적당한 PH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환수를 해야 했고, 일정한 온도 유지를 위해 겨울에는 히터를 틀고 여름에는 손풍기를 틀어서 수시로 온도 체크를 해야 했습니다. 깨끗한 물생활을 위해 수조 청소는 기본이었고요. 새우들이 질리지 않고 재밌게 잘 놀 수 있도록 끊임 없이 새로운 장난감으로 교체하며 놀이터 환경을 바꿔 주기도 했습니다. 너무 인공적인 장난감만 주는 것 같아, 살아 있는 수초를 넣어 주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수초를 키우는 것에도 많은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새우들 뒷바라지에 허리가 휠 지경이 된 거죠.

 

그럼에도

 

이 모든 번거롭고 돈 까먹는 일들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새우들을 위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거든요. 

 

(엄마와 겸상 중인 새끼 새우. 아니...아빠인가? 삼촌인가? 이모인가? 알 수 없음...)

 

나쁜 일은 의외의 곳에서 벌어 졌습니다. 새우가 반려 동물로서 개와 고양이 만큼의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새우를 키우는 것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수색해 보니 새우를 키우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동호회가 있었습니다. 친절하고 경험 많은 분들이 모여 있어서 새우 키우는데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었고, 새우를 예뻐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커뮤니티 사람들이 새우를 예뻐하는 기준과 관점이 저와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서 불편한 마음이 비죽거리며 튀어 나오기 시작햇습니다. 체리 새우는 색이 얼마나 붉고 진한지, CRS나 갤럭시 피쉬본 처럼 몸에 무늬가 있는 새우종은 무늬의 모양이 어떤지와 그 무늬가 얼마나 선명하지에 따라 예쁘다고 찬양을 받았고, 분양 '몸값'도 큰 차이를 보이며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예쁘지 않은 개체는 '탈락'군으로 분류 하는 모욕도 서슴치 않고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새우에게도 적용되는 현실이 슬펐습니다. 제가 받았던 유용한 정보가, 사실은 함께 사는 반려 동물을 잘 키울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니라 상품 가치 높은 새우를 잘 키울 수 있는 가이드였다는 사실도 무척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의 새우들은 붉은색이 진한 녀석도 있고, 투명에 가까워 붉은기가 거의 돌지 않는 녀석도 있습니다. 그 모두가 어떤 색이든 어떤 모양이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평화롭게 수조를 노니는 모습 자체가 나에게 행복을 안겨 주는 존재이지, 내게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여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실수가 많고 부족해도 나만의 방식으로 새우를 사랑하고 키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커뮤니티에는 발길을 끊었습니다.

 

새우는 수명이 짧고 매우 예민한 녀석들이어서 조금만 물 관리를 잘못해도 시름시름 앓다가 용궁으로 떠나는 슬픈 일도 벌어졌습니다. 분명 어디가 아픈거 같은데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볼 수 없었습니다. 설령 새우가 어디 아프다 말한다고 해도 데려갈 병원이 없다는 건 더 슬펐습니다. 강아지가 아프거나 무지개 다리 건너는 걸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반려견 키울 용기를 못내고 새우를 키운건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생명이 있는 무언가와 함께 산다는 건, 그 대상이 무엇이건 고민과 슬픔, 집착과 책임,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새우와 함께하며 다시금 깨닫습니다. 

 

최근에 새우들과의 관계에서 약간의 권태를 느낀 것도 같지만, 새우와의 인연을 글로 정리하다 보니 얼른 집에 가서 우리 이쁜 새우들을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기뻤다가 슬펐다가 설레였다가 심드렁했다를 반복하며 혼자 생쑈를 하고 있는 나같은 반려인간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명랑하게 물속을 헤엄치는 나의 새우를 만나러 얼른 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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