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성적 입력 마지막 날이다. 늘 마감일 전에 일을 끝마치는 스타일이지만 이번에는 좀 촉박했다.
한학기를 마무리하고 일주일 간 인도네사아와 말레이지아에 다녀 오느라 마지막날에야 겨우 일을 끝냈다.
이제 더 미룰 것도 없으니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가볍게 걷기라도 해야 된다고 내안의 내가 재촉한다.
오늘은 좀 쉬고 내일부터 운동을 시작하자고 또 한쪽의 내가 유혹한다. 1시간여 갈등하다 굼뱅이처럼 밖으로 나간다.
강남에서 경기도로 내려오면서 늘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는 동네에서 살면서도 산책 나가는 거에 인색하다. 남들이 만보를 걸었느니 트래킹을 했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나도 걸어야 하는데, 이렇게 운동을 안하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항상 내 발목을 잡는 것은 "나도 같이 걸을 사람이 있으면 열심히 할텐데..."라는 변명을 나에게 한곤한다. 실은 부부가 제일 부러운 것은 저녁에 천변을 같이 걷는다거나 산책로를 걷는 그 모습이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 길을 걷는 것조차 무섭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세상에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신문지상에서 읽은 수많은 범죄 사건들은 왜 쉽게 잊쳐지지 않는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한적하고 너무 아름다운 아파트 단지 산책로를 걸으며 "이렇게 좋은데 왜 맨날 안나온거야. 방학동안에 정말 열심히 좀 걸어야지" 다짐했다. 조금 운동범위를 넓혀서 단지를 벗어나서 사람이 없는 길을 걷는데 저쪽에서 한 남자가 걸어와서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되었다. 내가 앞서고 그분이 뒤에 오는 데 갑자기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나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약간의 두려움이 몰려오고 있다. 요즘 뉴스에 오느내리는 ' 돌려치기 남자 ',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무작정 해치는 분노한 사람들 ,심지어 계획적으로 살인을 해보고 싶은 사람까지 ... 내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잠재적 범죄자들에 대한 나의 공포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어폰을 꼽고 있었는데 귀는 뒷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지 쫑긋대고 있다.
'내가 산책 나오는 것을 자꾸 미루는 것은 나의 두려움 때문일까? 운동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향때문일까? ' 오늘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술 한잔 할 건데 뭐하러 차를 가지고 나와? 지하철 타고 오지? " 라고 말하지만 실은 밤중에 걸어 다니는 것도, 택시를 타려고 길에 서 있는 것도 지하철 안도 나는 다 무섭다. 지하철 안에서 험상궂은 사람, 혹은 이상한 사람이 유독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면 길거리에 서 있는 게 무섭고 싫어서 저녁에 잘 안다니지만 나갈 일이 있어도 꼭 내차를 가지고 가고 대리를 부른다.
그러고 보니 옛일이 생각이 난다. 친정이 있는 지방에 근무하게 되어 내려갔다가 미분양된 60평 아파트를 싸게 구입할 기회가 생겼다. 럭셔리하고 보안도 잘 되어 있는 아파트였는데 엄마가 오셔서 집을 둘러보더니, '너는 안무섭니? 이렇게 큰 집에 혼자 사는게? ' 하셨다. '뭐가 무서워 엄마. 나는 지하 주차장에서 엘레베이터까지 오는 게 무섭지 집에 오면 하나도 안무서워' 라고 한 적이 있다. 늘 그랬다. 강남에 살 때가 특히 그랬는데 지하에 차를 세우고 엘레베이터 앞까지 갈 때 혹시 누가 있나 주위를 둘러보고 후다다닥 달려가는데 약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당시에 백화점 앞에서 혹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외제차를 탄 주부를 납치해서 금품을 요구하는 사건들이 자주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럴 때 마다 강남의 소나타라고 하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던 나에게 엄마는 전화를 걸어서 조심하라고 했다. 20년 전에는 내가 범죄를 유도하는 어떤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그나마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지금은 그런 무서움이 아니다. 그때는 어떤 목적성이 있어서 사람을 위협하는 범죄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멀쩡한, 이웃집 사람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살인마로 변하니 예전보다 더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워지는게 아닌가 싶다.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항상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플랜을 짤 때도 다양한 계획을 세우는 인물이다 보니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을 넘어 두려움으로 몰려온다. 나이가 든다고 이런 마음이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나의 두려움에 대해 누군가 '무슨 걱정을 해 잡아 가도 아무 쓸모가 없을텐데 ' 라고 했는데 '왜 쓸모가 없어? 마늘 까는 데 데리고 간다잖아'라고 한적이 있다. 지진이 날까봐, 세상이 무너질까봐, 전쟁이 날까봐 무섭지는 않다. 옆에 있는 사람이 무섭다.
데이트 폭력은 또 어떤가? 누가 한 길 사람의 속을 알겠는가? 검증된 사람이라해도 믿을 수 있을까? 사람은 다 양면적인 구석이 있는데... 어린 자녀가 있는 여자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 함께 사는 여자들을 보면 내가 더 걱정이 앞선다. 너무 이상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이 점점 더 내 안의 두려움을 키운다. 이 두려움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할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래서 방구석 나홀로 하는 일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는데, 집밖의 나홀로는 많은 제약을 가지고 산다. 나도 자유롭고 싶고 이제 초연하게 그까짓것...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된다. 괜히 범죄자 취급 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다. 신은 왜 나같은 사람을 혼자살게 하셨을까?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큰 뜻이 있겠지.. 두려움을 끌어 안고 오늘도 집안에서 활개치며 거침없이 산다.
에그앤올리브
행복한 삶에 진심!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는 귀여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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