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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꽃밭과 아빠의 텃밭
쳬쳬23. 06. 27 · 읽음 111
옥천역@쳬쳬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 첫차를 타고 집에 다녀왔다.


대전역 지나면 도착하는 나의 고향은 흙내음과 풀내음이 제일 먼저 반기는 시골동네다. 역에는 아빠가 마중나와 계셨다. 아들들 집에 오는날이 제일 행복하다며 와줘서 고맙다 하셨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농부밥상을 먹고 함께 오디농장으로 출발했다.

 

오디농장과 개양귀비@쳬쳬

밭으로 가는 길에 엄마는 아빠가 쉬엄쉬엄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다며 즐거워 하셨다. 


작년에 무리하게 작물을 심고 힘에 부쳐 하며 지쳐 있는 아빠를 보다못해 집에 내려가 관리기로 밭을 갈아 엎은 뒤에 1.5m폭의 검은색 부직포로 밭 사방과 중간에 길을 내서 효율적으로 경작하지 못하게 밭을토막 냈다. 수익성을 좋게 하려면 효율적인 경작이 필요하지만, 아빠의 오디밭은 부모님의 은퇴 후 자아실현의 기초 공간의 의미가 더 큰 터라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는 땅을 놀릴 줄 모르는 아빠를 막으려면 밭에 고속도로 내듯 부직포로 포장도로를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당귀꽃@쳬쳬

아빠는 작년에 내가 부직포로 덮은 포장도로를 타포린 천으로 깔끔하게 재포장을 해 놓으셨다.


농작물 양도 절반으로 줄이고, 먹거나 테스트할 작물만 두 고랑씩 키우고 계셨다. 엄마는 농장 입구와 공도에 들꽃씨를 뿌려 꽃길을 만들었다. 연보랏빛 수레국화가 덤불처럼 밭 경계선을 표시하고 있었다. 도로 경계에는 울긋불긋한 개양귀비꽃이 심겨져 있었다. 엄마 전용 꽃씨 파종 텃밭엔 자주색 패랭이꽃이 밭 사이 경계를 만들고 있었다. 여름 꽃이 질 때쯤 피어오를 코스모스도 길가에서 새순을 피어내고 있었다. 엄마의 꽃밭은 엄마의 기쁨이자 아빠의 효율 억제기로 잘 쓰이고 있었다. 

 

수레국화@쳬쳬
패랭이꽃@쳬쳬
텃밭경계에 심겨진 개양귀비들@쳬쳬

농장 이곳 저곳에 피어 있는 꽃구경을 마치고 이번 주 바자회에 내놓을 야채를 수확했다.


몽골에 나무심으러 가는 친구들을 후원하기 위해 열린 바자회에 농장 작물을 내놓기로 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유기농 인증을 마친 완두콩, 백태와 서리태, 청국장, 그리고 수로 옆에 지생하는 앵두도 땄다.

 

완두콩@쳬쳬
야생앵두 덤불@쳬쳬

텃밭에서 뜯은 아욱으로 국을 끓여 점심을 해먹었다.


점심에 깍지 째 완두콩을 삶았더니 깍지의 단맛과 완두콩의 고소함이 어울렸다. 은퇴 후에 하시는 일로 두 분이 행복해 하셔서 다행이었다. 천천히 오래오래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감자캐는 엄마@아빠
감자캐는 아빠@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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쳬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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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안학교 교사, 직업재활시설 마케터, 바리스타 강사, 요리사, 잡지 에디터, 콜센터 상담원,그러나 지금은 앞둔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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