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는 집 앞 마당에 작게 텃밭을 일구어 갖가지 씨앗을 뿌리거나 어떨 때는 채소모종들을 심었다.강낭콩, 애호박, 청양고추, 깻잎, 상추, 가지, 쪽파, 대파 이랬던 것으로 기억난다.
작은 초등학생 눈에 보아도 몇 평 채 되지 않을 공간이었을테다. 그곳에서 갖가지 채소들을 어찌 그리 풍성하게 키워 냈을는지. 그녀는 분명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러하니 채소가 풍성해지는 계절이 돌아오면 좋든 싫든 우리자매는 실컷 먹을 수밖에 . 다행히 우리는 편식을 거의 하지 않는 어린이들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90년도 시골에서 자라났으니 만큼. 음식을 따져가며 입맛대로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름이면 풋내 나는 애호박이 듬뿍 들은 구수한 된장찌개에 으레 칼칼한 청양고추를 얇게 송송 썰어 은근한 불에서 보글보글 끓여냈다. 또 한 가지. 엄마는 여름이면 쪽파숙회를 자주 만들어 줬다. 그녀의 쪽파숙회에는 레시피가 있다. 새끼손가락만 한 굵기에 몽당한 길이로 손질한 햄과 게맛살이 추가된다는 것. 거기에 보통의 쪽파숙회가 그러하듯 , 우리는 초고추장에 새콤하게 찍어서 먹는 것을 꽤나 좋아했었다.
"얘들아 저녁 먹자." 골목어귀까지 우리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비석 치기를 하던 판판하고 얇으면서 좀 넓은 돌멩이를 미련 없이 땅바닥에 내던지고 냉큼 집으로 뛰어 들어갔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 편식을 하지 않아 반찬투정이라는 것은 해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물론 이건 그녀의 말도 들어봐야 하는 거겠지만, 아무래도 일이 조금 번거로워지기 전에 이쯤에서 얼른 그만두기로 해야겠다. 어쨌든 매일이 별 다를 것 없는 비슷한 밥상이었으나 무척 맛있게 먹곤했다.
어릴 때 기억 덕분일까,
여름즈음. 어김없이 생각나는 음식이라면. 음, 아무래도 엄마의 단골메뉴. 쪽파숙회. 얼마 전에도 쪽파를 사뒀다.그리곤 해 먹어야지 생각만 하면서 늦장을 부리다 결국 그러다 끝이 시들해지고 누렇게 뜨기 시작했다. 하니 더 늦기 전에 숙회를 만들기로 한다.
쪽파를 손질한 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그리고 냄비에 보글보글 물이 끓으면 하얀 머리 부분부터 넣어 데쳐준다. 잠시뒤에 데친 쪽파를 찬물에 한번 식혀 물기를 꼭 짜준다. 그리고 마무리는 그녀의 레시피대로 따라 하기. 몽당썰은 햄과 역시 몽당한 게맛살에 쪽파의 하얀 머리 부분을 잡고 돌돌돌 말아 주면 끝이다. 이제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다.
한데 나의 아들 . 열 살 둘째 승이가 특별한 주문을 한다. "엄마, 나도 그거 먹어볼래. 내 거는 시금치처럼 깨랑 소금을 넣고 고소하게 만들어줘."
입맛 까다롭고 예민한 사춘기. 열세살 큰아들을 기르느라 단련이 된 나는 굳이 먹기 싫다는 음식을 강요하는 데에 힘을 빼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한번 먹어볼래?물음 끝에 싫다면 그걸로 끝내고 여간해서는 다시 권하지 않는데, 꼬맹이의 특별주문에 신이 났다. 한데 이미 모든 쪽파를 돌돌돌 말아버렸다.
이거 조금 번거롭겠는걸, 다시 풀어 시금치처럼 조물조물 무친 다음 돌돌 말아야 되려나, 앗. 깨 ,소금,참기름을 쪽파말이 위에 조금씩 발라주기만 하면 되겠어,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자 이내 화색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애써 같은 일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굳이 피곤해지는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쪽파를 도르르 말다가 뜬금없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내 아이들이 훗날 . 나를 떠올리면 생각날 단골메뉴는 뭐가 될는지,
뭐 별거 없데도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우리가 함께 먹은 끼니가 매번 맛있고 즐거울 수는 없었겠지만 행복한 식탁도 있었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 이미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니까. 나의 여름 .엄마의 쪽파숙회처럼.
김영혜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형님몬스테라와 아기몬스테라, 하트아이비, 스투키,이오난사를 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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