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물꽂이, 그 신기함
북캉스23. 07. 17 · 읽음 466

  몇 년째 식물을 키우며 버릇이 하나 생겼다. '물꽂이'가 그것이다. 댕강 잘린 줄기에서 뿌리가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나서 이 실험적인 습관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우리집 곳곳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물 속에 떡하니 꽂혀 있다. 물꽂이에 실패하는 것들도 물론 있다. 그래도 나의 물꽂이 시도는 계속 된다.

 

 장마철을 앞두고는 옥상텃밭에 심었던 바질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바질이 과습에 약한 허브라고 해서 장마 기간 전에 부랴부랴 먹었고, 먹고도 남은 것은 물꽂이 후 다시 새 화분에 식재하기 위해 잘라냈다. 

 

 잘라낸 바질 몇 대를 작은 통에 꽂아두고 2~3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었다. 물꽂이 후 뿌리가 나오기 전에는 직사광선은 피해야 한다기에 TV장에 올려두었다. 그것이 6월 25일 목요일이었고, 조용하던 바질에서 6월 30일 하얀 뿌리 몇 가닥이 나왔다. 뿌리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뿌리를 내보인 이후에는 자라는 게 눈에 띌 정도로 빠른 속도로 뿌리가 길어졌다. 물꽂이에 성공한 바질을 화분에 옮겨주면서, 두 달 전 물에 담가두었던 레몬 줄기와 한 달 전 물꽂이 한 보스턴고사리도 흙에 심어주기로 했다. 

 

<물꽂이로 뿌리를 내린 후

화분에 옮긴 바질, 레몬, 보스턴고사리>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아이가 5살일 때, 레몬즙을 짜먹고 남은 레몬에서 나온 씨앗을 화분에 심었다. 별 기대없이 씨앗 2개를 심었는데 그 씨앗이 발아되고 지금까지도 우리집에서 잘 커가고 있다. 수형이 예쁘지 않아 가지치기를 해주면서 혹시나해서 물에 꽂아뒀는데 두 달 여가 지나자 뿌리를 보여주었다. 식물은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기쁨과 놀라움을 쏟아낸다. 

 

<물꽂이로 뿌리를 내린 레몬줄기>

 

 보스턴고사리도 내가 좋아하는 반려식물 중의 하나다. 실내에서 키우다가 여름 햇살을 좀 쐬어주려고 이틀을 밖에 두었더니 볕이 너무 강했나보다. 이파리가 누렇게 타버린 부분을 솎아내다가 보스턴고사리 줄기를 끊고야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러너*가 함께 달려 있어서 물꽂이를 쉽게 할 수 있었다. 

 

 화분에 아직 심지는 않았지만 물꽂이 진행 중인 한 아이는 스파티필름이다. 물을 주고 마른 이파리를 정리하다가 뚝 끊어버려 미안한 마음이 컸던 녀석이다. 이 아이도 설마하며 물에 꽂아뒀는데 고맙게도 뿌리를 내렸다.

 

<물꽂이로 뿌리를 내린 스파티필름>

 

그렇지만 물꽂이한 모든 식물이 다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니다. 레몬그라스는 뿌리를 보기도 전에 줄기에 하얀 곰팡이가 폈고,  뿌리를 내렸던 고수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까맣게 물러터졌다. 담가뒀던 물에 산소가 부족했나 싶다. 그런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뭐든 물에 꽂는 시도를 한다. 지금은 로즈마리 두 줄기를 물에 꽂아놓았는데 한 쪽에서만 열흘만에 하얀 뿌리가 빼꼼히 나온 상태다. 

 

<물꽂이로 뿌리를 내린 로즈마리>

 

 잘린 줄기에서 뿌리를 내리는 식물의 능력이 신기하기도 하고, 뿌리를 내리고 또 하나의 개체로 자라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한지 말도 걸어보고, 잎도 쓰다듬어 본다. 그리고 흙에 옮겨심기도 한다. 자꾸만 늘어나는 화분을 보고 오늘은 뭘 또 심었냐는 남편의 형식적인 물음에, 듣지도 않는 설명을 신나게 하는 나는 식물이 주는 매력에 빠진 것이 확실하다. 

 


*러너: 이파리가 없는 줄기로, 보스턴고사리는 이 러너를 흙에 묻어주거나 물에 담가 개체수를 늘린다.

 

 

 

4
북캉스
팔로워

일상다반사, 일상을 쓰다.

댓글 4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전체 스토리

    이런 글은 어떠세요? 👀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