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로팟, 영양제를 줄까, 말까?
이야기하는늑대23. 07. 07 · 읽음 334

2022년 7월 6일

 


 펠렛에서 화분으로 옮긴 후 예상치 못하게 가장 작은 화분의 싹이 제일 잘 자라고 있었다. 잘 자라는 건 좋은데 문제는 화분이 가장 작다는 점이었다. 펠렛에서 화분으로 이사 오고 어느 정도 안정이 돼서 싹들이 잘 고정이 됐다 싶었는데 다시 다른 화분으로 이사를 가야 되는 상황이 왔다. 안 그래도 이런 부분을 나도 모르게 조금은 예상했는지 생활소품을 파는 매장을 둘러보다 화분이 보이 길래 살까 하다 말았던 적이 있다. 샀어야 했다. 조만간 다시 매장에 나가 하나 사야 되는 건가 하는 고민을 머릿속에 우선 담아 뒀다.

 

 

 며칠을 물도 주고 바람도 쐬주고 햇빛과도 인사하면서 조금씩 자라는 싹의 키와 커져만 가는 초보식집사의 마음을 확인하는 나날이 계속 흘러갔다. 저 번에 조금은 거리 두기를 하자고 마음먹은 날 저녁에 시들한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움과 걱정이 한 번에 밀려왔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푸릇 파릇 생생하게 다시 살아난 잎을 보고 저녁에 일시적으로 쉬기 위해 잠시 처진 거구나 싶었다. 다행이다.

 

 

 작은 화분의 싹은 이제 어느덧 싹이 나던 갓난아이의 모습을 벗어나 까불거리며 뛰 노는 4살 아이 같은 모습으로 화분이 좁다는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머리에 담아 두었던 화분을 하나 기어이 사야 되는 건가 하는 고민을 다시 끄집어냈다. 사는 건 문제가 아닌데 다소 귀찮기도 하고 키트에 동봉된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화분의 취지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문득 대용량의 요거트 용기가 생각났다. 장 건강을 위해 요거트를 자주 먹는데 다 먹고 남은 용기를 반으로 자르면 꽤 괜찮은 화분이 될 것 같았다. 마침 거의 다 먹어 가는 요거트가 있어 냅다 다 마셔 버리고 자르기로 했다.

 

 

 안쪽 면에 묻어 남아 있는 요거트를 물로 헹구고 반으로 잘랐다. 바닥에 구멍을 뚫고 물빠짐망은 이사를 하려고 하는 작은 화분 안에 깔려 있는 걸 그대로 활용하기로 했다. 마침 처음에 펠렛에서 화분으로 모두 이사하는 날 쓰고 남은 배양토도 있어 충분히 흙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본적인 준비를 마치고 작은 화분에 있는 싹을 흙과 한 번에 쏙 하고 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역시 키트에 동봉된 작은 모종삽으로 화분 벽면을 살살 긁어내면서 흙을 분리해 냈는데 처음 펠렛에서 작디작은 싹을 옮길 때보다는 한결 수월할 줄 알았는데 또 그렇지도 않았다.

 

 

 뿌리에 흙이 묻어 있는 싹을 엉성하게 바닥에 눕혀 놓고 뿌리가 마를 새라 반으로 잘린 요거트 용기에 물빠짐망을 깔고 작은 화분에 있던 상토를 쏟아붓고 남아 있던 배양토로 마저 채웠다. 어느 정도 채운 뒤에 모종삽을 이용해 작은 구덩이를 파내고 바닥에 두었던 싹을 옮겨 심었다. 조금은 자라서 줄기도 힘이 있어 보여 쉽게 될 줄 알았는데 역시나 처음엔 잘 서지 않았다. 주변에 흙을 눌러 주고 물을 뿌려 주면서 계속 자리를 잡고 설 수 있게 애를 썼다.

 

 

 노력이 가상했는지 어찌 저찌 자리를 잡았다. 원래 계획은 이렇게 부분적인 2차 화분갈이를 하면서 모든 화분에 영양제도 다 같이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직 다른 두 개의 화분에 있는 녀석들은 자라는 속도가 상당히 더뎌 펠렛에서 옮겨 왔을 때와 비교해서 눈을 씻고 봐야 조금은 컸구나 하고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 다른 분의 가슴 아픈 경험을 통한 조언도 있고 또 다른 분의 아직 어린싹에 영양제는 오히려 과해 뿌리가 녹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어 선뜻 주기가 뭐 했다. 하루나 이틀 정도 더 보고 영양제를 주기로 했다. 그것도 조금.

 

 

 그런데 문득 왜 이리 생장속도가 차이가 나지 하고 생각을 해 봤다. 알 길이 없었다. 초보 중에서도 쌩초보 식집사인 내가 알아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을 하고 또 해보니 작은 화분과 다른 두 개의 상대적으로 큰 화분의 차이점은 바로 흙이었다. 다른 건 다를 게 없었는데 처음 펠렛에서 화분으로 이사를 할 때 작은 화분은 키트에 동봉된 상토를 채웠고 다른 두 개의 화분은 따로 사온 배양토를 채웠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초보 식집사이기 때문에 단어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거겠지 하는 머리로서의 의식만 있었을 뿐 실질적으로 차이가 있을 거라는 인식은 없었다. 뭐 다르니까 이름이 다르겠지만 결국 다 흙 아니겠어? 이 정도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그 차이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었다.

 

 

 궁금한 길에 찾아보니 뭐라 뭐라 길게 설명은 해 놨는데 초보 식집사답게 무식할 정도로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상토에 영양분이 더 많다! 배양토는 그냥 분갈이용 흙이다! 이거였다. 그렇다. 작은 화분의 상토엔 기본적으로 배양토보다 더 많은 영양소가 있었기 때문에 더 잘 자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금수저와 흙수저, 아니 상토수저와 배양토수저의 근본적인 시작의 차이였던 것이다. 가진 것들은 더 빨리 가질 수 있는 더러운 세상의 이치가 여기에도 적용이 되다니! 근본 현실 흙수저인 나는 울분과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고 뭣도 모르고 세상 순수한 모습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별님이 들을 뭘 어쩌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여하튼 이번에도 영양제는 조금 시간을 두고 주기로 했다. 아니면 다른 두 개의 배양토수저들에게만 먼저 조금 줄까? 아니 그것도 조금 더 봐야겠다.

 

 

 영양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내가 참 영양제가 고프다. 살면서 영양제를 딱히 먹어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에 원숭이(손오공) 모양의 작은 사탕 같은 비타민제가 있었다. 이걸 알면 그야말로 연식이 어느 정도인지 나온다. 여하튼 그 비타민제와 지금도 파는지 모르겠는데 눈 건강과 뭐 이거 저거 좋다고 했던 ‘삐콤씨’를 엄마가 한 번 사줬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론 특별히 영양제를 먹은 적이 없다.

 

 

 

 철근도 씹어 먹을 것 같은 10대 때는 영양제 따위에 눈 돌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부모가 준 생명 근본의 성장에너지는 정말 어마무시해서 잘 먹기만 하면 됐다. 잘 먹어서 키도 크고 골격도 보기 좋을 정도로 잘 컸다. 20대라고 다를 건 없었다. 밤새 술을 퍼 마시고 새벽이 아닌 아침 7시에 알바 장소인 카페에 바로 출근해 매장 소파에서 구겨져 2시간 정도만 자고 9시에 일어나 오픈 준비를 할 정도였으니 영양제 사 먹을 돈이 있으면 술을 사 먹었을 것이다.

 

 

 

 30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억에 의하면 30대가 됐을 때도 20대와 비교해 몸의 변화는 크게 느낄 수 없었다. 30대 초반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할 때였는데 방영이 되고 한참 뒤에 드라마 ‘궁’에 꽂혀 24부작을 3일 만에 다 봤다. 당연히 카페 일을 정상적으로 출근하면서 봤다. 24부작이니까 3일이면 하루에 8부작 8시간, 그러니까 자는 시간을 온전히 드라마 보는데 받쳤다. 그래도 별 탈이 없었다. 영양제 사 먹을 돈이 있었으면 카페에서 입고 일하기 좋은 예쁜 셔츠 하나를 더 샀을 것이다.

 

 

 

 두둥! 용가리 통뼈는 아니었는지 30대 중후반을 넘어서기 시작하니 소위 면역력이라는 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생 살아오면서 알레르기성 질환이란 걸 앓아 본 적이 없었는데 비염이 생겨 버렸다. 윽... 비염은 정말 생활의 질을 현격하게 떨어트린다. 다행인 건 늘 그런 건 아니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 힘든 거라 그나마 버틸 만했다. 이게 시작이었다. 이걸 시작으로 40대 초반인 지금 여러 가지 자잘한 질환들이 힘들게 하고 있다. 젊을 때, 건강할 때 몸 챙기라는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지만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젊을 때, 건강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본인들도 겪고 나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에 하는 소리였으리라.

 

 

 

 지금부터라도 더 늦지 않게 챙기면 된다. 영양제도 조금 먹고 운동도 하고... 다만 4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영양제 따위에 관심도 두지 않다 먹으려니 영 귀찮아 그게 문제다. 이럴 땐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으면 된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먹게 된다. 밥 먹고 설거지하고 있으면 아내가 비타민D 하나를 입에 넣어 준다. 조만간 봐서 비타민C도 하나 사 먹을 계획이다. 운동은 일 마치고 들어 와 걷기 운동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예정을 빨리 끌어 와야 한다. 벌써부터 미루려 하고 있다.)

 

 

 

 이제 막 싹의 모습을 벗어나려고 하는 별님이들에게도 아마 아직은 영양제가 과한 게 맞을 것이다. 나처럼 문제가 슬슬 생기기 시작하는 40대가 되기 전에 10대, 20대는 아직 파릇파릇하니 30대 즈음에 챙겨주겠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여유 있게 영양제를 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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