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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을 탐하다
소로소로23. 07. 18 · 읽음 148

 

새벽수영 4개월 차 수영장 삐약이는 외친다. 깔쌈한 수영복이 입고 싶다! 이 정도면 입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기승전결 알록달록이 수영복 샀다고 광고하고 싶은 마음속 외침을 더 참지 못했다. 진즉 유럽스타일 수영복을 장만했지만 내 토르소[머리와 팔다리가 없이 몸통만으로 된 조각상] 사이즈만 믿고 XS사이즈를 장만했던 배럴 수영복은 처참했다. 

 

 

수영으로 3kg이 빠졌지만 손바닥 만한 수영복을 입자 겨드랑 와 허벅지만 빠져서 꽤 괜찮은 몸매인 줄  알았던 나의 살들과 마주했다. 등살과 골반 옆으로 나온 아이들은 해병대 훈련소 기압소리 악!! 악!! 악!! 세 번 외침처럼 처절했다. 급한 성격에 택까지 잘라버려서 이걸 어쩌나 돈만 날렸구나 울상이다. 으헤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급 방긋 딸이 있으니 좋구나 둘째 크면 입는 걸로 서랍장으로 고이 접어 넣어뒀다. 예쁘게 입고 다닐 거라는 생각이 무너지자 상실감도 밀려왔다.

 

 



급격한 체력저하도 더해져서 슬펐지만 비타민 2알과 쭉 짜 먹는 다단계 영양제까지 먹었더니 일주일 만에 피로가 싹 가셨고 수영복 실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네이버에 수영복 브랜드를 들락날락 거린다. 나이키도 이쁘고 배럴도 이쁘고 르망고등 여름이라 신제품들이 줄을 섰다. 어서 긁으세요 7월 생일이잖아요. 괜찮습니다 이 정도 보상은 해주셔야지요. 회원가입과 동시에 생일할인 쿠폰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오 신이시여 이것이 수영복입니까? 메이커에 관심은 없지만 뭔가 많이 본 꽃이 수영복에 박혔다. 이건 사야 하는구나 눈이 반짝거리며 열심히 검색을 했는데 세상에 하나도 없다. 이쁜 건 나만 알아보는 것이 아니었고 이미 멋쟁이 언니야들이 다 사갔다. 수영모자까지 너무 예쁘다며 내 눈은 이걸 보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얼마나 열심히 찾았는지 드디어 S사이즈를 찾았다. 

 

 

키가 작은 나에게 빛과 희망이 덩실 떠올라 입꼬리가 실룩 거리며 히죽히죽 웃는다. 가족들은 핸드폰을 부여잡고 키득키득 엄마가 저러고 있으니 뭐가 좋아 그러나 수영복인걸 보더니 이번엔 잘 사라고 격려를 하고 사라진다. 성인 S사이즈와 키즈 XL 사이즈가 같다고 사이즈표에 나왔다. 심지어 161cm 51킬로 아가씨들이 입었다는 인증이 올라온다. 운명의 심장이 쿵쿵 타타 울려주고 수영복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수영모까지 바구니에 풍덩 살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결제를 하려고 봤더니 어머나 주말이라며 20% 쿠폰까지 이건 사야 해 어차피 살 거잖아 셀프 다독임과 동시에 띵동 결제 문자가 울렸다. 

 

그날부터 기다림의 고난이 시작이다. 품절난 물건을 겨우 구하는 느낌 다들 알고 있으니 말이다. 영롱한 꽃무늬 수영복이 내 품으로 오기를 핸드폰에 배송완료 뜨기를 기다려 왔다. 화상 치료 때문에 3주 쉬고 중급에 올라간 기념으로 입어주면 타이밍 굿이다. 택배 상자를 열고 받아본 아이는 너무 예뻐서 물속에 들어가기 아까울 정도였고 워터파크 예쁨주의 수영복이었다. 다들 마르디 마르디 하는구나 미쳤다며 가볍게 택을 잘랐다. 

 

 


 

넌 내 거야 
빨리 새벽이 와서 나와 함께 가자

 

 

 

물 한 방울 닿지 않은 이 영롱한 수영복을 꺼내서 살포시 인증숏 날려주었다. 착용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이렇게 간직하며 얼른 물속으로 데려다줄게 신바람이 났다. 

 

 

새벽수영 숙련자처럼 빠르게 탈의하고 목욕 바구니를 팔에 걸고 들어갔다. 샤워까지 즐겁게 하고 수영복을 쏙 끌어올려 입었다. 어머어마 딱이야!! 저번에 XS사이즈는 양심 없었구나 키즈라인도 가성비가 좋아 성인용 보다 가격도 3만 원 저렴하고 평생 키 작고 마른 걸로 슬펐는데 이런 횡재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중급반 수강생들이 웅성웅성 신상 수영복 샀나 봐 너무 예쁘다. 다들 보자마자 감탄해 주었고 이거 없어서 못 샀는데 어떻게 샀냐고 물어봤다. 품절 나서 키즈라인에서 샀다고 말하니 대박이라고 물개박수를 쳐 주었다. 수다를 한바탕 떨고 수영장 입구 앞으로 싱크로나이즈 선수처럼 팔을 앞뒤로 흔들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구니 놓는 곳에 드디어 전신 거울을 마주하는 그 순간 정직한 몸매와 마주 했다.

 

 

 

 

 몰랐니?

 

악!! 악!! 악!! 내 배가 그대로 뽈록 검은색 수영복을 입을 때 감춰져서 덜 했던 그 아이가 드러났다. 모르셨어요? 아니면 외면했습니까? 몸매는 그대로입니다 수영복이 잘 못한 건 없어요. 모델핏 그분은 깡마르셨고요. 어머니는 그 몸매가 아닙니다. 이미 수영복은 입었고 칭찬세례까지 받았는데 다시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커튼이 열리면 당신은 앞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새벽반은 연령대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 청소년부터 노년까지 부끄러움은 내 몫이고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검정에서 화사한 회색은 누구나 구분할 수 있다. 빨강을 안 산 게 최선이었고 배에 올려진 꽃이 가로로 퍼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다. 인생 한 번뿐 입고 싶은 거 다 입고 이미 자른 택은 다시 붙일 수 없다. 

 

 


 

당신만 보이는 수영복을 탐하다.
민망함은 잠깐 
누려라 품절을 쟁취한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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