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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로팟] 날 떠나지마..
파초청녀23. 07. 19 · 읽음 231

가수 박진영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출근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 순간 그의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날 떠나지마..슬픈 영화속에 주인공은 싫어..날 울리지마.." 그 사연은 이러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주니어들에게 인사를 건네러 베란다로 나섰다. 그런데..우리 2호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푸릇푸릇 아주 기세등등한 1호와 3호의 모습과는 달리 하룻밤새 숲과같던 몸집이 움츠러든것도 모자라 잎들이 거의 땅에 닿을듯이 축 쳐진것. 그동안 장마라고 습해서 물을 안줘서 그런가 싶어서 급하게 겉흙을 만져보았지만 여전히 촉촉한 상태. 그래서 이파리들을 뒤집어 까보았더니..세상에 점같은 응애벌레들이 진짜 엄청나게 붙어있었다. 잘 버티던 우리 2호가 이렇게 죽는것인가. 안돼! 절대 용남할 수 없어!

 

이 사진을 다시 보니 이미 이때부터 잎이 밑으로 쳐져있다. 그동안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녀석이 점점 힘겨워한다는걸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깊은 후회..그래서 오늘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응애에게 점령당한 이파리들을 다 떼어내기로 한것. 일단 큰 이파리부터 떼어내기 시작했는데 한겹한겹 벗겨낼수록 아주 가관이었다. 속에 파뭍혀 안보였던 이파리들은 세상에 거의 하얀 가루를 뿌린듯이 상태가 심각했던것. 그래서 진짜 거의 다 떼버렸다.

갑자기 휑해진 녀석..이파리를 떼어낸것이 잘 한 선택인지 모르겠다. 사실 아무 정보도 없이 확신도 없이 저지른 일이기에 이것이 2호에게 좋은영향을 미칠지, 아닐지는..지켜봐야할듯하다. (화분의 앞모습)

운전을 하면서 내내 마음이 안좋았다. 그래서 검색시작. "꽃의 잎을 다 떼어내면"이라고 검색했더니 어떤분이 이미 몇년전에 네이* 지식*에 올린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읽자 마자 진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꽃은 잎으로 광합성을 해서 잎을 다 떼어버리면 죽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식물에 따라 가지고 있는 영양분(? - 영양분은 아니고 어떤 다른 단어였는데 잘 기억이 안난다.)으로 새 잎과 줄기를 내밀어 살기도 하지만 계속 떼어내면 결국 비축된 영양분(?)이 다 소진되어 죽게 된다." 순간 말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급하게 사진을 보았다. 다행이 갓 나온듯한 잎들은 떼네지 않았는데 저 아이들이 우리 2호를 살릴 수 있을지..마음이 초조하다. 너무 초조하다. 

그동안 초록별로 식물들을 한번도 안떠나보낸건 아니지만 너무도 애착을 갖고 키워왔기에..만약 결국 초록별로 가버린다면 한동안 상실감이 엄청날것같다. 제발..다시한번 너의 생명력을 보여주기를. 부탁해. 아직은 날 떠나면 안돼..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단 말이야. 제발 살아놔줘. 오늘은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얼른 퇴근해서 우리 2호를 보러가고 싶다.

 

우리 1호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몸집으로 끊임없는 개화를 보여주고 있다. 요새는 늘 노심초사하는게, 2호를 아무리 격리 시켜도 베란다라는 공간적 한계때문에 응애벌레가 옮지는 않을까 항상 1호와 3호를 유심히 보는데 다행이 옮지 않았다. 

2호못지않게 만발하고 있는 1호. 요새 장마라고 물을 안줬더니 잎이 조금씩 끝부분부터 마르는것 같은데 오늘 폭염이라고 해서 화분에 물을 흠뻑주고 왔다. 아주 기특한 녀석이다. 

우리 3호. 새쓱 그로로님이 이파리가 움푹패이는 이유가 상처가 났거나 질소과다라고 하셨는데, 질소과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ㅠㅠ) 상처는 한번 났었어서.일단 지켜보는 중이다. 그런데 오늘 탄산수병을 들어보니 뿌리가 가장 밑바닥에 돌돌돌 말려있는 모습을 보았다. 더이상 뿌리가 뻗칠곳이 없어서 이런 양상을 보이는것 같다..이번주에 진짜 분갈이를 해주던가....해야겠다...으허허허허허....그래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니 그저 고마운 마음!

 


내가 너무 속상해 하니 남편이 "그거 언제까지 키우는거야? 꽃 피웠으니 끝난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그래서 "아니야, 8월에 꽃이 다 질때까지 키우는거야"라고 대답했는데, 막상 말하고 나니 마음이 우울해졌다. 앞으로 우리 주니어들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남은시간을 정말 귀하게 보내야겠다. (우리 2호도 꼭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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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청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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