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사비와 나는 누가 뭐라 해도 한식 파다.
뜨끈한 국물요리나 알싸하게 매운 요리, 그리고 곱창이나 닭발 같은 호불호 있는 음식까지 너무 찰떡이다.
언젠가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한 관계들이 입안의 가시처럼 따끔거린다. 덩달아 따끔거리는 밥을 먹는 시간도 싫어졌다.
밥은 편하게 먹어야 한다. 편한 사람과 함께.
와사비는 전시 1팀 내 옆옆자리 선배님이었다. 동생이지만 나보다 먼저 입사했으므로 선배였다. 착하고 예뻤던 와사비는 운전이 서툰 그 시절, 나의 갑작스러운 외근에도 기꺼이 조수석에 앉아주었다. 목숨이 두 개일리가 없는데.. 미안해하는 나에게도 언제나 웃으며 자기는 괜찮다고만 했다. 얼굴은 예쁜데 내숭은 없고 털털한 그녀는 남자직원들도 좋아하지만 여자직원들도 좋아해서 모두의 사랑을 받는 직원이었다.
퇴사를 하고 육아를 하면서도 우리는 자주 만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가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창밖의 날씨를 체크하고는, 하늘이 너무 화창하고 좋다면 바로 연락을 했다.
"있잖아,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누군가 이렇게 물어보면 상대방은
"그러네 날씨가 너~무 좋다 어디서 만날까?"
우리는 소박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아기띠를 했다가 아장아장 걸었다가 아이들이 커 가는 시간만큼 함께 밥을 먹은 시간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러 우리는 초등학생 학부형이 되었다. 학부형이 된 이후로도 불편한 사이는 여전히 존재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엄마들의 약속을 피해 밥친구와 밥을 먹는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밥과 함께 슥슥 섞는다. 그리고 한 숟가락 듬뿍 떠서 꿀꺽 삼켜버린다. 그로 인해 서로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것이다.
어느 날.
와사비는 나에게 나지막이 물어왔다.
"언니 우리도 예쁜 곳에서 브런치 같은 거 먹으면 안 될까?"
"응 안돼"
단호박이다. 미안하지만 브런치는 다른 사람들과 먹으라며 거절했다. 물론 예쁘고 핫한 브런치 카페를 나는 누구보다 좋아한다. 하지만 예쁘고 불편한 시간보다 편하고 따뜻한 밥 한 끼가 지금의 나에게는 더 소중하다. 예쁜 카페만 찾아다니던 시절도 호텔뷔페만 사랑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은 소중한 사람과 먹는 따뜻한 밥의 의미는 예전의 의미를 상실했다. 더 중요한 가치를 이제는 가슴이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 화목순댓국 먹자.
유재석도 성시경도 다녀가고 나서는 밥 먹기가 더 힘들어졌다. 일찍 달려가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줄을 선다. 뒤로도 길게 늘어서있는 대기줄이 보인다. 멀리서 와사비가 밝은 인사를 건네며 걸어온다.
오픈런에 기꺼이 동참해 착석 후 받아 드는 뜨끈한 순댓국 한 그릇. 새우젓을 살짝 풀고 후추를 톡톡 뿌려서 휘휘 저어 본다. 첫 한입을 꿀꺽.
목구멍을 타고 따뜻한 공기가 세포 하나하나까지 전달되는 이 느낌.
이. 제. 살. 겠. 다.
마주 앉은 우리는 서로 말이 없다. 그냥 한참을 먹다 보면 좀 천천히 먹자거나 지금이라도 숟가락을 놓자며 국밥을 향해 돌진하는 식탐을 말려주는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단 한 사람.
내 밥친구다.
여름의푸른색
제주에서 그로로팟으로 바질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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