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카시아 이야기] #1. 객식구에서 가족이 되기까지
파초청녀23. 07. 28 · 읽음 153

내가 처음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던 2022년 6월. 한참 새싹이 돋아나고 있을 때, 초록별로 가장먼저 떠나보낸 녀석이 있다. 바로 꽃기린. 친정엄마 텃밭에서 너무도 예쁘게 꽃을 피우는 녀석을 보았는데 어느날 엄마 텃밭에서 퍼온 흙이 담겨있던 화분 하나에서 싹이 돋아난것이 아닌가. 그래서 잘 키워보려고 했으나 녀석의 그릇은 화분이 감당하기에 너무 컸고 결국 시들시들하다 초록별로 가버렸다. 그런데 그 화분에서 갑자기 어떤 생명체가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이게뭐지?"하는 궁금증으로 녀석을 지켜보았는데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엄청나게 큰 얼굴을 보여주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친정엄마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나: 엄마 이게 뭐야?

엄마: 알로카시아 같은데? 몬스테라인가?

나: 그래서 그게 뭐야?

엄마: 뭐긴 뭐야 공기정화식물이지

 

그렇게..녀석과 처음만났다. 그리고 그 즈음 바질을 분갈이하게 되었는데 자꾸 정체모를 녀석에게 눈길이 갔다. 그래서 마음이 시키는대로 바질분갈이를 하면서 녀석도 화분하나에 정식으로 분갈이를 해주었다.  요렇게.

아! 사진을 가만보니 이 화분이 지금 우리 멜란포디움 주니어 2호가 있는 곳이네. 저 화분도 역사가 긴 회분이구나. 분갈이를 해주고 나니 녀석의 정체가 더욱 더 궁금해져 사진으로 찍어보았다. 그랬더니 "알로카시아"라고 뜨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친정엄마에게 또 연락을 했다. 알로카시아라고. 엄마도 사진을 보시더니 알로카시아 맞다면서 엄마집에 거의 컴퓨터 모니터만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녀석이 알로카시아라고 하시며 엄청나게 클 성장력을 지닌 녀석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녀석은 시간이 지날 수록 신기한 모습을 보였다. 저렇게 세 잎이 사이좋게 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잎 하나가 누렇게 변하면서 시들고,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얼마전에 그로로에서 "하엽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아티클을 읽게 되었다. 우리집 알로카시아도 하엽을 계속했던것이다. 아티클에서는 소독된 가위로 하엽한 잎을 잘라주라는데 나는 그냥 잘 씻은 손으로 늘 뜯어준다.)

 

그러던 어느날. 녀석의 뿌리가 흙을 뚫고 밖으로 나온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또 한번의 분갈이를 해주었다. 가만보면 나도 이 녀석에 알게모르게 책임감? 애정? 을 느끼고 있었나보다. 분갈이를 두번이나 해준것을 보면. 그래서 지금의 화분에 녀석이 정착하게 되었다. 확실히 분갈이를 하고나니 녀석은 엄청난 성장을 보여주었다. 

 

키가 쑥~크더니 세장이던 잎이 네장이 되었다. 그렇게 녀석은 객식구에서 가족이 되었다. 두번이나 실패한 상추가 떠나는 동안, 같은 시기에 분갈이를 했던 동지 바질이 꽃을 피우다가 겨울을 나지 못하고 얼어죽는 동안, 두번의 당근을 수확하는 동안 베란다 한켠에서 소리없이 꾸준히 하엽하고 새로운 촉을 내밀면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로로팟으로 멜람포디움 주니어들을 만나고 분갈이를 해주던 즈음. 그로로에서 제공해준 상토가 모자라서 아는 지인분께 거름 섞인 상토를 얻어서 주니어들 화분에 채워주고 조금 남았었다. 그래서 어디다 쓸까 하다가 녀석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위에 살살살 뿌려 조금 채워주었더니...! 녀석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잎사귀가 엄청나게 커진것이 아닌가..! 오마이갓. 이게 거름의 효과인가!!!!!!!!!!!!!!!! 분명 내 손바닥 만한 잎이 가장 큰 잎이였는데 이제 우리 남편 손바닥도 넘는 크기로 커버린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잎도 엄청 커서 늘 우리 아이들 손바닥만하던 잎이 내 손바닥 만해졌다. 장황하게 썼는데 쉽게 표현하자면 잎사귀가 갑자기 두배로 커졌다는 말이다. 우어..............이렇게 어마어마한 성장력을 가진 녀석에게 비료도 안주고.. 나란 식집사..진짜 무심하고 게으르다..(급 반성중 ㅜ ㅜ ) 그리고 사진을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여전히 하엽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저 잎사귀는 내가 어제 뜯어주었다. 

 

옆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하엽한 잎사귀가 말라갈수록 중간쯔음에 돋아나는 촉이 점점 선명하게 보인다. 

이건 오늘 아침에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 하엽하던 잎은 이제 사라지고 새로 나올 잎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공기정화식물로 유명한 알로카시아지만, 아직 집안까지 들일 자신은 없어서 베란다에서 크고 있는 우리집알로카시아. 요새 새로 읽기 시작한 책 "이웃집 식물상담소"에는 알로카시아 같이 우리가 소위 관엽식물이라고 부르는 식물들은 사실 화분에서 자라면 안되는 식물이라고 한다. 열대지역 출신인 알로카시아는 정말 환경이 잘맞으면 사람키보다도 더 자랄수 있는 식물이라..어찌보면 화분에서 자라는 알로카시아들은 동물원에 갇힌 동물과도 같은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런 구절을 읽고 녀석을 보니 왠지 짠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난 친정집의 진짜 우리 첫째아이보다도 키가 큰 알로카시아가 생각났다. 우리집 알로카시아도 더 큰 화분으로 옮겨주면 아마 엄청 잘 자랄텐데..큰 화분을 구해봐야할까.  식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고뇌도 더 깊어지는 듯 하다. 

 


알로카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적어보려해요. 그동안 가족이면서도 객식구처럼 대한 알로카시아에게 관심을 좀 가져보려해요. 여러가지 계기가 있는데 일단 그로로에서 본 하엽에 관한 고찰글이 출발점이 되었고, 어떤 메이커님이 글에 써주신 식물도 눈물을 흘린다는 글이 동기부여가 되었고, 정점은 앞에서 언급한 새로 읽기 시작한 이웃집 식물상담소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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