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맞이하는 여름, 그러니까 서른일곱 번째 맞는 여름이지만 맞이한다기보다 의지와 상관없이 맞닥뜨려 당하고 겪어내는 시기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매년 필패한다.
퇴사를 하고 나니, 퇴직금이 줄어드는 게 실시간 주식 그래프처럼 눈에 읽힌다. 절약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태껏 에어컨도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 꿉꿉함에 오래 뒤척이는 날에만 잠시 에어컨을 틀고 잠들면 바로 끄고 창문을 활짝 연다
결혼하기 전 엄마와 둘이 살 때는 선풍기 한대로 잘만 살았는데, 그마저도 상체 위로두는 풍향에는 두통을 호소하는 엄마 때문에 늘 발 끝 방향으로 틀어놓고 생활하고 잠들곤 했다.
몸에 끈적임이 생기면 정말이지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아니, 하기 싫어진다. 하루 활동능률을 확 떨어뜨린다. 땀에 붙은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간지럽히고, 가려워 긁는 손의 힘조차 조절이 힘든지 어떻게든 흔적과 상처를 남긴다. 이런 날은 학창 시절 교실 뒤편 청소함에 있던 빛바랜 노란 싸리빗자루만큼 두껍고 많은 숱의 머리카락에도 원망을 한다. 비오는 날 우산을 못 챙겨도 숱이 많으니 비 좀 맞아도 된다 했던 내 허세가 무색해진다. 두피에서 나오는 땀과 열을 내 굵디굵은 머리카락이 아주 철저하게 막아내고 있는 것 같다. 그 열은 다시 내 두피로 스며든다. 머리가 아주 뜨겁다.
몸이 수년사이 급격하게 불기 시작하면서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숨이 차고 흉곽이 뻐근하다. 숨이 차니, 심호흡을 해야 덜해 질텐데 그때마다 가슴뼈 전체가 아프다. 그렇게 숨은 점점 가쁘고 자연스럽게 표정은 일그러진다. 땀은 맺힘을 넘어서 굵게 주르륵 흐른다. 얼굴에 있는 모공 하나하나에서 땀을 최대치로 쏟아낸다.
그래서 정말 꼴 보기 싫은 얼굴이 된다. 고작 아이의 하굣길에 걷는 10분 안에 생기는 일이다.
샤워하고 나오자마자 다시금 두피부터 차는 땀의 불쾌감 역시 이루 말할 수없다. 이미 탑재된 그날의 불쾌감이 우선인지, 진정 더운 날씨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동시다발적이고 복합적으로 발생하며 짜증지수가 폭발적으로 올라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매년 몸이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미치도록 더워서 세게 틀어버린 선풍기에도 이젠 두통이 생긴다. 아니면 코, 목감기에 걸려 몇일의 컨디션을 다 망치기도 한다. 닮고 싶지 않은 엄마의 요상하고 예민한 증세들을 나도 닮아가고 있다.
여름 내내 온 세포들이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정상적 심신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지내기란 내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오죽하면 그해 여름 심신에 큰 손상 없이 보내고, 누군가와 큰 트러블 없이 보냈다면 그 해 전반을 무난히 보냈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게 여름은 난관이다.
마음을 성급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들고, 웃는 상보다 죽상에 가까운 표정이 차라리 쉽게 만드는 시간이다. 여름주는 생동감과 액티브함 보다는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픈 절기를 여섯 번이나 보내야 하는 고난의 계절이다. 계절이 주는 것만으로도 내게 여름은 그렇다.
그럼에도 올여름, 나는 새로운 앞날에 대한 꿈을 꾸고 있고 온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일을 찾았다. 퇴사를 선택하고 새로운 진로를 향해 쌓아 가는 시간들이 있기에 결코 고난의 여름만은 아니다. 문득 청량한 여름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연둣빛,초록빛이 섞인 한 여름날의 장면이 머릿속에 스친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올 여름 아직 끝나지 않은 '한여름'이라 불리는 시공간에서 바래본다. 훗날엔 '버거움'보다 '청량함'이 우선인 게 당연한 여름이 내 삶에 문득 찾아와주길 말이다.
KSY
강함과 유약함 사이를 넘나들며 사는 이의 이야기. 남들에겐 안물안궁일 뿐인 내 마음이 나는 지독하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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