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정신 못 차리던 오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복숭아 조림 해서 쪼매 보냈데."
감기 걸려 친정엘 못 갔는데, 동생네 식구들 오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오늘도 엄마는 아들 셋 키우는 큰 딸이 걱정이었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복숭아 조림을 다시 만들고 있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놓은 복숭아 조림은 여름이면 냉장고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얼굴보다 큰 스텐 대접에 가득 담아 앉은자리에서 숨도 안 쉬고 먹던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시고 나면 아이스크림은 생각도 나질 않는 마성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로 유학을 가고 떨어져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엄마의 복숭아 조림은 서서히 추억의 맛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다.
둘째가 뱃속에 자라고 있던 날, 복숭아 조림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막상 먹으려니 동네 슈퍼에는 없고 인터넷으로 복숭아 조림을 주문했다. 하필 친정을 가기로 한 일정에 택배가 온다 해서 급하게 친정으로 물건을 받았다. 임산부의 특권이라며 애지중지 혼자서 야금야금 그 맛을 즐겼다.
그 사소한 걸 기억하고 계셨나 보다. 셋째를 임신하고 지쳐있던 어느 날, 복숭아 조림을 해주셨다. 사서 먹어도 되는데 힘든데 뭐 하려 했냐며 괜히 손사래 쳤지만, 좋았다. 엄마가 해주는 그 여름의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언제까지나 엄마 그늘에 쉬고 싶어 하는 아이는 아직도 어린애인가 보다.
작년에는 복숭아가 풍년이라며 무려 김치통 2개에 복숭아 조림을 보내주셨다. 다섯 식구와 시댁 식구들, 친구들까지 달달함을 나눠 즐겼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복숭아 파는 지인 분이 일찍 복숭아 수확을 접으셨다며, 조금만 보낸다 하셨다.(그래도 김치통 1개)
오늘, 택배를 열자마자 아이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외할머니의 손맛을 맛보느라 무아지경이다. 한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맛있다 소리를 연발한다. 손주들 맛있게 먹일 생각에 복숭아를 깎고, 자르고, 끓이고 그 귀찮은 일을 올해도 하셨다.
한입 베어 물자 달달한 사랑이 혀끝으로 감긴다.
여름의 맛, 엄마의 복숭아 조림을 오래도록 먹고 싶다.

가독성
지구에서 살아 숨 쉬는 동안 나의 우주를 소중히 받아들이는 존재로 남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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