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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죽어야만 했냐
소로소로23. 08. 03 · 읽음 172

물건을 고를 때도 성향이 나타나듯이 식물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개업식에 가는 화분이 아니고서야 본인의 식물 취향은 존재한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어째서 키우기가 어려운가 예쁘다 싶은 식물들은 참으로 키우기가 까다로웠다. 식물도 주인을 닮아서라고 생각한다면 정답이다.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도 적정한 온도와 목으로 넘어가는 쌀알의 굵기와 양이 정해져 있듯이 말하지 못하는 식물 또한 그러하다.

 


 

 

 

마오리 코로키아

 

초록잎이 앞면 뒷면이 은빛인 코르키아는 키우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하지만 오묘한 색감과 자태 덕분에 그만큼 매력적이다. 가지가 얼마나 얇은지 정말 만지면 똑 부르 질 것 같고 잎도 작고 얇다. 감을 먹고 씨앗을 갈랐을 때 하얀 숟가락이 나오는 그 모양이 딱 저 모양이다. 한 폭에 동양화처럼 식물에 선이 보여 매력이 넘치지만 섣불리 키우라고 권하는 식물은 아니다.

 

 


 

 

 

 

보는 사람마다 미모사라고 정답처럼 외치지만 이름은 은엽 아카시아이다. 작은 입들이 모여서 잔잔하게 크는데 만지면 아기 손처럼 야들야들하고 햇빛을 많이 받으면 보랏빛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엽 아카시아다. 잘 키워낸다면 노란색 올망졸망한 불꽃 모양 꽃들이 주렁주렁 열려 환희라는 표현이 딱이다. 환희를 느껴보지 못하고 코로키아 다음 해 여름 그렇게 또 한놈이 강을 건나갔다. 매년 여름이면 하나씩 죽음의 저승사자가 나타나 어떤 놈을 잡아먹을까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다. 매년 식물들이 죽어나갔고 4년째가 되니 여름이 두려웠다. 휴가만 가면 식물이 하나씩 죽고 작년에 죽인 유칼립투스는 정말 애지중지 키운 게 억울했다.

 


식물에 성향도 반영되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은 각오해야 한다. 초록이들이 폭풍성장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비가 몰아치기도 하다. 비가 많이 내려 일조량이 받쳐주지 못하면 병이 들고 뜨거운 강한 햇빛에는 실내온도가 높아 잎이 말라버리니 강제로 드라이가 되어 석고처럼 사망해 버린다.

 


 

핑크아디안텀고사리

 

 

 

올여름휴가기간에 살아남았다. 작은 은행잎 같은 모양에 입을 만지면 촉감이 차가우며 기분이 좋다. 고사리란 이름에 걸맞게 대가 올라올 때면 말려 나오고 쭉 뻗어 올라 펼쳐진다.


tip
물을 좋아하는 아이라 폭염에 말라죽을까 봐 해가 덜 드는 곳으로 옮겨두고 플라스틱 통에 물을 넣어서 마르지 않게 뒀다. 화분을 고를 때 토기로 고르는 이유 중 하나이다 김장독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물도 잘 머금고 숨통이 틔이는 것 같다.

 

 

 

 

3년 전 여름에 죽은 걸로 모자라 작년부터 키우고 있는 애지중지한 은엽이. 봄까지 잘 안크다 올여름 시작과 동시에 폭풍으로 자라고 있다 한 뼘 자라고 또 한 뼘 성장속도에 맞춰서 물과 영양제도 챙겨줬더니 아래부터 귀여운 가지가 나오고 있다. 휴가 가기 전에 물에 담가 뒀더니 10% 잎이 마르고 거의 쌩쌩한 모습이라 너무 뿌듯했다.

 

 

아직 폭염이 기승을 부려 식물이 죽을까 봐 매일 에어컨샤워 해드리고 물에 영양제도 섞어서 상전처럼 모시고 있다. 한 달 더 상전을 모시고 있으면 올해 환희의 꽃을 볼 수 있을지 내심 기대해 본다. 식물과 사람 역시 지치지 않게 적절할 때 쉬며 수분과 영양분을 보충해줘야 하는 건 진리이다.

 


tip 화분 옆에서 진을 치는 작은 날벌레 퇴치법
날 벌레쯤으로 가볍게 여기면 뿌리파리 유충들이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어 결국 고사시킨다. 제 빠르게 식물 해충제를 구입해서 물에 소량 섞어 식물에 뿌려 없애주고 가급적이면 화분에 우유팩 헹군 물 같은 건 주지 않는 게 좋다.

 


tip 과습과 햇빛만큼 중요한 환기
덥다고 문을 꽁꽁 닫고 있기보다 내부 공기를 한 번씩 바꿔줘야 사람도 식물도 잘 자란다. 신선항 공기도 추가하는 걸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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