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5일
사람 의식의 흐름은 무가치하면서 실로 대단한 거 같다. 키우고 있는 풀 그러니까 식물, 이름은 별님이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글로 쓰려 했는데 머릿속에 불현듯 든 생각은 수학에서 이야기하는 ‘극한’과 신승훈의 노래 ‘보이지 않는 사랑’이었다.
키우고 있는 식물과 수학의 개념 중에 하나인 극한 그리고 신승훈의 노래인 보이지 않는 사랑이 도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뇌 속에서 전파를 이용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의식 혹은 무의식에게 묻고 싶다. 아니 인간의 모든 생각 행위 등은 모두 뇌가 명령을 내리는 거니까 뇌에게 물어봐야 되는 건가? 이유가 있건 없건 간에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처럼 전혀 연결 고리가 없는 것들이 연결된 지점을 또 놀랍게 끼워 맞춰 보려 한다.
일단 팍팍한 수학의 극한부터 가 보자. 극한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가? 여러 분야에서 극한까지 몰아붙여 뭐 어쩌고 저쩌고 이런 표현을 많이 쓴다. 극한, 대충 찾아보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한]계라고 한다. 하지만 수학에서는 그 궁극적인 한계에 도달할 수 없다. 조금 더 구분해 보면 진정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이야기하는 경우와(이 경우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한계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 그렇게 쓰고 있어 따질 역량이 부족해 그냥 넘어간다.) 어떠한 지점으로 도달하길 기대하는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그야말로 도달할 수 없는 경우니까 넘어가고 두 번째는 도달하길 바라는 애매한 상황이라 조금 더 부연을 해 보자. 1/X에서 분모인 X의 크기를 무한대로 키워 버리면 분자는 1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결과는 분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점점 작아진다. 그래서 언젠가는 0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결과적으로 0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 혹은 추정으로 0이 된다고 해 버린다. 하지만 분모의 숫자는 무한대로 커지고 있기 때문에 결과도 무한대로 작아질 뿐 결코 0이 될 수 없다. 물론 0에 점점 가까워지기는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언젠가는 끝이 있다면(이란 기대를 하지만 수의 끝은 없다. 내가 알기로는...) 0이 될 거야라고 누구의 편의인지 모르겠지만 웃기지도 않게 그냥 그렇게 말해 버리는 경우다.
끝이 없는데 끝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이 지점이 키우고 있는 식물의 아직 피지 않는 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과 아주 약하게 연결된 거 같다. 억지로 끼워 맞춰 보면... 뭐 이런 거다. 설명한 대로 수학에서의 극한은 끝이 없는 데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 키우고 있는 식물은 분명히 꽃이 필 것이다. 꽃이 피는 순간을 끝이라고 하면 그 끝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끝을 바라고 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우고 있는 식물 녀석들은 도무지 그 끝을 분명히 존재할 그 끝을 아름다울 꽃을 아직 피워 보여 주지 않고 있다.
끝이 없는데 바라는 마음과 끝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기다림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제대로 키워내지 못해 반드시 꽃을 피워낼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의 필연적인 생명정보를 뭉개 버린 건지 모를 상황에 올 수 있는 끝이 결국 오지 않는 건가? 하는 걱정이 뭐 대충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이상한 무의식의 흐름이 연결을 시켜 버린 것 같다. 아! 뭐라는 거야!
여하튼 두 번째,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확인해 보자. 정확히는 그 가사가 생각났다.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수학의 극한을 생각한 이후에...
"내 곁에 있어 달라는 말하지 않았지
하지만 떠날 필요 없잖아
보이지 않게 사랑할 거야
너무 슬퍼 눈물 보이지 마
어제는 사랑을 오늘은 이별을
미소 짓는 얼굴로 울고 있었지
하지만 나 이렇게 슬프게 우는 건
내일이면 찾아올 그리움 때문일 거야"
크~ 가사 정말 박살 난다. 그냥 시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얼마나 사랑하면 저런 마음일까? 내 곁에 있어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단다. 그렇다고 떠나면 어떻게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게 사랑해야 되니까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한다. 아따! 환장하겠네! 저 마음을 저 아픔을 저 사랑을 어떻게 할 거야... 그리고 이어지는 호흡도 없는 것처럼 뇌까리는 그리움에 대한 가사는 그야말로 가슴을 후벼 판다. 아니 사실 너무 바보 같다. 세상에 저런 사랑이 어디 있어! 저런 사랑은 있으면 안 된다. 한쪽은 너무 아프고 한쪽은 너무 잔인해지고...
흠흠, 흥분을 가라앉히고. 간만에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는데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말았다. 문제는 이 가사가 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식물 녀석을 생각하다가 떠오른 건가 하는 거다. 내 곁에 있는 식물들이고 발이 달려 있지 않으니 떠날 수도 없다. 다만, 보이지 않게 사랑하는 건 일정 부분 맞는 거 같다.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녀석들이 자리하고 있는 베란다를 들락거린다. 속에선 왜 꽃을 피우지 않는지 묻는다. 하지만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오진 않는다. 눈으로만 물어볼 뿐,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어제는 내일은 피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잠들지만 오늘은 다시 피지 않은 꽃을 확인할 뿐이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미소를 지으며 우는 건 아니고 물을 줄 뿐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찾아 올 역시 피지 않은 꽃에 대한 무너진 기대가 결과적으론 아직 피지도 않은 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그래서 연결이 된 건가 하고 역시 억지를 부려 본다.
더 문제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이틀 후에 4박 5일의 휴가를 갈 건데 그 시기에 바라마지 않던 꽃을 피울 건지 미소를 지으며 많은 물을 주고 갈 거지만 이 폭염에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더해서 2차 분갈이를 아직 해주지 못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성장이 더뎌 그런 거 같기도 한데 휴가 가기 전까지 시간도 마땅치 않아 결국 휴가 후에 모든 걸 확인 혹은 수습해야 될 상황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펠렛에 씨앗 하나, 화분에도 싹 하나 이렇게 심었어야 했다. 그럼 추가적인 분갈이 걱정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하는늑대
살아 온 이야기, 살고 있는 이야기, 살아 갈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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