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민어를 못먹겠구나
새벽녁에 잠이 깼다.
복날이 언제였지? 올 복에는 민어를 못먹겠구나. 동생은 목포 어디에서 민어를 주문 했을까? ...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친다.
몇 주 전에 저 세상으로 간 남동생이 스쳐간다.
복날 즈음에는 남동생이 목포에서 8키로 정도의 어마무지 큰 민어를 주문해서 공수한다. 민어는 여름이 제철이다.
얼음에 채워진 민어회, 부레, 민어전거리, 매운탕거리가 도착할 즈음이면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이 둘러 앉아 여름 보양식을 먹을 준비를 한다. 부레를 찍어 먹을 기름 소금, 뱃살을 위한 와사비를 풀은 초고추장, 기름이 둥둥 뜨는 매운탕을 끓일 준비 등에 빠질 수 없는 것이 함께 곁들일 술이다.
어느 해는 사케로 , 어느 해는 위스키로, 어느 해는 와인으로...
여름 민어 회동은 나의 기억으로 할아버지 때 부터 이어진 우리 집 큰 행사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동생은 딸 셋을 낳고 아주 귀하게 얻었다. 셋째 딸인 나와는 달리 편애로 인해 괴로울 정도였다. 귀하게 태어나서 그랬는지 명이 원래 짧아 그랬는지 60대 초반에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간 남동생에게 그의 동료며 선배며 후배며 모두 이렇게 말했다.
"000님은 남자답게 멋있게 살다 가셨어요!"
그 많은 선배, 후배, 동료들이 안타깝게 그를 보냈지만... 그 자신은 멋있게 살다 홀연히 갔다.
남은 우리는 매년 여름이 되면 '민어'를 생각하며 동생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누구도 '민어'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부모님도 언니들도 올해는 민어회동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날잡으쇼! 내가 해줄텐께..
강남에서 손꼽히는 맛집 주인인 친한 지인의 가게에서 또 한 명의 후배와 식사를 하는 중이다.
"언니, 이거 드셔보시오. 이 민어전을 오늘 내가 절인 깻잎에 싸서 ..."
갑자기 남동생이 훅 치고 들어온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우리 남동생이 참 먹고, 놀고, 하는 것을 잘했지 한량처럼 ...항상 목포에서 이맘때쯤이면 민어를 공수하는데.. "
"그랬소. 왜 말을 안해주시오. 언니 올해는 내가 해줄랑께 날 잡으쇼. 내가 민어회, 민어전, 민어 매운탕 다 준비해 갈텐께 00야 니는 맛난 깻잎만 준비해라잉. 내가 매실 쌈장까지 다 준비할텐께"
전라도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이 너무 깔끔하고 맛있게 하는 그녀는 나를 위해 민어 한상을 차려왔다. 마치 세꼬시를 설듯 듬성듬성 썰은 민어를 매실 된장에 찍어 먹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정말 이 여름에 놓칠 수 없는 맛이다.
꼬들꼬들한 민어를 한상 먹고 나니 언제 일어났는지 따끈한 민어전과 육전을 내 놓는다. 마지막으로 된장으로만 간한 민어매운탕이 등장했는데, 정말 여름 보양식의 진수였다. 우리 집은 싱싱한 민어로 민어 매운탕을 끓이는데 그녀는 된장을 약간 풀어 미소된장 국 같은 맑은 색의 민어탕을 끓여 냈다. 정말 그 맛은 환상적이었다.
여름의 맛 '민어'를 생각하면 멀리는 할아버지도 생각난다. 할아버지께서는 마지막 코스인 민어 매운탕에 꼭 식초를 한방울 넣으셨고, 그래서 우리는 늘 매운탕에 식초로 맛을 다잡아 왔다. 그 '민어'는 이제 내 남동생을 떠오르게 한다. 나에게 '민어'는 가족이다. 특별했던 올 여름 가족같은 이들이 내게 '민어'를 선물했다. 음식은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보여주고 받아주며 하나가 되게 한다. 말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민어를 준비해서 아버지께 가야겠다. 그저 아버지랑 술 한잔 기울여야 겠다.
에그앤올리브
행복한 삶에 진심!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는 귀여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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