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촉감 놀이를 시켜 달라고 조르는 딸의 떼씀을 끝까지 견뎌내지 못한 죗값으로 나는 거실 구석구석 민들레 홀씨처럼 참으로 자유분방하게 퍼져있는 밀가루를 육두문자를 읊조리며 치워야 했다. 다시 한번만 더 밀가루 놀이 시켜달라고 하기만 해 봐. 어릴 적 엄마한테 들어서 싫었던 말투를 끊어내지 못한 오늘의 나였다.
남편은 그제부터 으슬으슬 컨디션이 안 좋다고 했다. 어젯밤 분수 광장으로 네 식구가 도란도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체온을 재보니 신랑 체온이 세상에 39도가 넘었다. 헤엑 이게 뭐야.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해 보았더니 선명한두 줄. 회사에 제출할 증빙서류를 떼러 오늘 점심에 집 앞 이비인후과에서 신속항원 검사를 했더니 역시나 확진.
열은 나지 않지만 목이 따갑고 기침이 나며 허벅지께가 끊어질 것 같은 근육통이 있는 걸로 미루어보아, 나 또한 확진인것 같다. 다만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엄마라는 내 자리를 지키기로, 코로나 검사는 해 보지 않기로 했다. 확진이면 또 어쩔 건가 어차피 미니미들은 내가 필요할 텐데. 그냥 나는 안 걸렸다고 생각하고 일상을 강행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복숭아갈비를 맛있다 생각하고 뜯는 것 같은. 뭐 그런 사고 전략이다.
현대 심리학은 엄마도 엄마 자신을 아껴주라는데. 내가 나 자신을 아끼자고 드러누워있으면 미니미 2호가 미끄럼틀 잡고 일어설 때 코박지 않게 잡아주는 건 누가 하고, 까다로운 1호의 엄마 지분 애정 탱크는 누가 채워준단 말인가. 우이씨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도 나 어릴 때 이랬을 것 같다. 나처럼 고운 시절에 자기가 아파도 나랑 동생 밥 먹이고 옷 입히며생명을 떼어줬겠지. 엄마는 심지어 따스한 마음을 함께 나눌 반려자도 없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하나님께서 엄마의 슬픔의 날들을 비교도 되지 않는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한다.
어쨌거나 가장이 아프고 내 컨디션도 까라지니 자꾸만 첫째 딸에게 짜증을 가르친다. 평소의 나라면 화내지 않을 사소한 일들에도 오만상이 찌푸려진다. (이것이 내 본성이다.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환기가 필요한 우리 모녀는 잠든 미니미2호와 미니미 성체(=남편)를 집에 두고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에 나오니까 기분이 좀 가라앉는다. 집에서 날 옥죄던 피곤함과 울적한 기분이 집 밖에선 힘을 못 쓰는 모양. 다행이다.
"엄마 우이 노이터 한 번 가꾸야."
ㄹ 발음이 안 되는 우리 딸의 목소리와 말투는 정말 사랑스럽다.
"엄마 나 구네 타꾸야."
"엄마가 미여도. 쎼~게 미여도."
아직 ㅈ발음도 ㅈ과 ㄷ 사이의 그 어떤 발음으로 말한다. 귀여워서 따라 하면 불 같이 화를 낸다. 엄마 구게 아니고 똑바로말해야ㅈㄷㅣ!
그네가 앞뒤로 왔다 갔다 58번쯤 하자 다른 놀이기구도 타자는 미니미 1호.
엄마 나 이제 그예 구만 하꾸야.
엄마 나 이제 미꾸영틀 타고 시퍼.
엄마 우이 시소 타ㄹ까?
엄마 쿵 땨 쿵땨 해도.
엄마 구만 해. 꺅꺅캭."
엄마.
엄마
엄마
엄마아-!
내 치마를 잡아끄는, 1초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나를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듣다가 문득 울컥한다. 이 아이가 나를 부르는 빈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훅훅 줄어들겠지. 일주일에 서너 번 영상통화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할까 말까 하는 나와엄마처럼.
미니미 그네를 밀어주다 보니 놀이터 옆에 안개꽃이 피어있다. 오잉 놀이터에 웬 안개꽃이? 가까이 다가가보니 개망초달걀꽃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 5~6월쯤부터 조그만 달걀 프라이처럼 생겨서 놀이터 옆에 언제나 정답게 피어있던 개망초 꽃이 이제 지고 있다. 8월부터는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개망초의 꽃말은 '화해',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
장미, 작약, 백합, 튤립. 뭐 이런 화려하고 낭만적인(?) 꽃들도 좋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해도 끊임없이 잔잔한 미소를 주는 개망초의 꽃이 마음을 사로잡는 오늘이다. 개망초의 어여쁜 꽃말처럼, 아프다는 핑계로 짜증에 굴복했던 나 자신과 화해한다. 내일부터 다시, 부정적인 마음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 '죽음을 떠올리자'는 사고 전략을 적용할 것을 다짐한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또는 내게 남은 시간이 1년뿐이라면. 나는 아기들이 밀가루를 거실 바닥이 아니라 침대에묻히고 논대도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미니미 1호가 자기 좀 봐 달라 징징거려도 싸늘한 눈빛이 아닌 따뜻한 품으로 아이를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아. '죽음'이라는 나의 사고 전략이 너무 극단적인가? 그렇지 않다. 오늘 내가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오늘 건강해도 내일 천국에서 눈을 뜰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므로.
놀이터 옆에서 잔잔히 피어 사람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는 개망초처럼. 곁에 있는 미니미와 남편에게 은은한 행복을주는 내가 되기를. 이제는 열매 맺고자 그 조그맣고 귀여운 모습을 기꺼이 내려놓는 이 풀꽃처럼. 나의 꿈과 연약함 모두하나님 앞에 의탁하고 오늘 허락하고 맡기신 일상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내가 되기를.
다정한수도꼭지
예수님 보혈로 천국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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