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아아의 계절이여
요상한엘리23. 08. 21 · 읽음 65

얼마 전, 그로로 이웃 '이야기하는 늑대' 님께서 "커피는 왜 마실까?"라는 화두를 던지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화두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일찍이 '커'밍아웃한 바와 같이, 나는 커피골초다. 정말 못 말리는 골초다.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해봤다. 

 

'나는 커피를 왜 마시는 걸까??' 

 

그리고 댓글을 달았다. 

 

"어렸을 때는 멋으로 마셨고, 20대 때는 일할려고 마셨고, 지금은 살려고 마셔요."

 

정말 그렇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가 홀짝이는 그 믹스커피가 그렇게 맛있어 보였고, 멋있어 보였고, 뭔가 있어 보였다. 

 

"엄마, 커피 맛있어? 커피가 그렇게 좋아?"

"삶의 낙이다." 

 

그래서 그 커피를 마시는게 어른이 된 건 줄 알았다. 식곤증이 있어서 커피를 마시면 배가 불러서 졸린대도, '시험공부'한다는 허세에 도취되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스타벅스가 몇개 없을 무렵에는 그냥 왜 인지 줄창 앉아있는게 좋았다. 

 

그러다 입사를 하고 일을 하면서부터는, 일터에 나왔으니 마셨고, 상사와 이야기를 할때 한잔씩 했고, 거래처를 만나서도 한잔씩 마셨다. 

 

그렇게 오늘이 된거다. 

 

커피를 한잔 하지 않은 날은 멍하고, 피곤하고, 기분도 다운되고, 머리도 아프고..... 두통약을 먹어도 시원찮은데, 커피를 마시면 말끔!! 

 

유쾌. 상쾌. 통쾌!!!

 

구제불능의 커피골초, 카페인중독자다. 

 

원래는 '따아'였다. 타죽어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상한 허세와 자존심이 있었다. 

 

 

그러다 이번 폭염. 

 

진짜. 이건 생존의 문제다. 생존은 본능을 더욱 충실하게 일깨웠다.

 

매일 같이 따아를 마시던 나는, 정말 죽을 거 같은 어느날 비로소 '아아'를 한잔 시켰다. 

 

"아아, 이거구나! 아아." 

 

어렸을 때는 몰랐던 온탕의 시원한 맛을 나이가 들면 알게 되듯 (이건 좀 상황이 바뀌게 됐네......?????)

 

어려서는 몰랐던, '아아의 참맛'을 이번 여름 알게 됐다. 

 

땀을 뻘뻘 흘리며, 타인과의 약속 혹은 나 자신과의 약속장소에 도착을 하고 시원하게 들이키는 여름의 '아아'.

 

여름철 아아는 생존의 맛이요, 진정한 극락이다. 

 

쭈욱~ 들이킬 때의 시원함, 정신을 번쩍 깨우는 카페인! 그리고 달그락사그락, 사락사락. 시원한 얼음소리. 마지막 한방울까지 탈탈 털어마신 뒤. 비로소 아쉬움에 씹어먹는 얼음. 

 

 

그래, 이게 여름의 맛이지. 

 

선명한 여름에는 뭐든지 또렷해진다. 그게 무엇이든 강렬하게 대비되어야 여름이다. 

 

더위와 땀방울에는 확실한 시원함, 얼음이 딱이다. 

 


 

어느 누군가 올린 카페의 간판에서 봤다. 

 


싱거운 놈  :  아메리카노 

부드러운 놈 : 카푸치노 

고소한 놈 : 카페라떼

달달한 놈 : 마끼아또 

독한 놈 : 에스프레소

복잡한 놈 : 카페모카  


 

에헤이, 이 양반아. 

 

뜨겁고 차가운 것은, 맹렬한 영혼과 육신의 본능적인 감각이거늘! 

 

단맛, 쓴맛 만으로 이렇게 구분하면 쓰겠는가!

 

아이스아메리카노 하나, 너그럽게 추가해주겠나. 시원한 놈, 이라고. 그정도 아량은 베풀어야 이 여름이 서운하지 않지.  

10
요상한엘리
팔로워

이름은 천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글을 그립니다.

댓글 10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전체 스토리

    이런 글은 어떠세요? 👀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