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전면에 나왔지만, 소설가인 심윤경 작가가 아이를 키우는이야기.
첫아이를 키우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할머니, 할머니의 언어. 할머니의 사랑.
가벼운 일상 육아 회상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었는디..... 묘합니다?
일단 술술 잘 읽히는데, 교훈?? 깊이 새길만한 부분은 있는데.... 책의 '할머니'처럼 잔잔해서 그런지, 강렬하게 빻! (저..도파민 중독인가봐요..??)
간단하게 요약하면, 개인적인 감상평으로는
- 편안하게 읽기 좋으나
- 아이 키우는 얘기가 재미없다면 그닥?
- 반대로 어린 아이, 아기가 있다면 핵공감?
(모성 신성화 없이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첫아이를 엄마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음)
책의 특징이다 싶은 부분이 있는데..
- 김영하 북클럽 추천도서
- 전주독서대전 올해의 책
그만한 값어치가 있겠지...요....?
아, 또하나 관전 포인트...
작가가 '분자물리학' 출신이라는 점을 알고 보면, 보이는 독특한 시선과 표현이 조금씩 묻어있고, 그게 인상 깊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받은 줄도 몰랐다. '받은 사람이 받은 줄도 모르게 하는 것', 그것조차 명인의 솜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할머니에게 배운 사랑을 한줄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주는 평화'일 것이다." p.6
"아이에게 무언가 잘해주려 애쓰다가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고 불만과 다툼의 늪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무언가 힘써 좋은 것을 해줄 필요가 없었다.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면 족했다. 가장 중요한 사랑은 아이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p.6
"가만 지켜보니 그분에게 남은 언어는 거의 그것뿐이었다. 밥 먹었나, 밥 먹어라, 애 밥줘라. (중략) 그분의 인생은 거의 소진되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는데 100년에 가까운 그 시간을 증류해 가장 마지막 한 방울로 압축하면 개족들이 배고픈지 묻고 밥을 챙겨주어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p.15
"나는 알 수 없이 폭발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채 숨을 쉴 수 없을만큼 통곡했다. 통곡보다 발작에 가깝도록 폭풍 같은 눈물이었다." p.17
"스스로 당황스러울 만큼 폭발적이었던 눈물. 통곡하는 나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나 자신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전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숨은 감정이 폭발해 제2의 나를 만들고 내 피부 바깥으로 뛰쳐바왔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스스로 알지 못했던 그 강렬한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p.18
"흔한 한국 풍습에 따라 내 아이의 이름은 시부모님이 정해오셨고 나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내 성씨가 아닌 남편의 성씨를 따라야 하는 것도 몹시 억울했다. 내가 낳았고 내 아이인데 아이에 대한 중요한 결정권은 모두 남들에게 있었다." p.24
"할머니는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 판단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나쁘다거나 못됐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별나다고 했다 (중략) 사람마다 제각각 별난 개성들이 있는데, 함께 살다 보면 그것이 때로 견디기 힘들 지경이 되곤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할머니는 그렇게 표현했다.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갈등들이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부대낌의 문제인 것을 그분은 알고 있었다." p.62
"행복에 인간의 언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를 떠올릴수록 나의 풍성하고 다양한 언어는 촌스럽고 불완전하게, 심지어 성가시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p.74
"그냥 상상할 수 없는 이 기나긴 시간의 작용으로 이렇게 믿기 어렵도록 아름답고 복잡한 세상이 만들어졌고. 그중 약 100년 정도의 시간동안 나라는 존재에게 숨결이 함께 머무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p.97
"무신론자의 세계는 공허하지도 냉정하지도 않다.
인생의 앞과 뒤에 그 어떤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해도, 겨우 100년 어름의 시간도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고 사랑할 만하다. 생의 과정과 결과에 신의 포상이나 처벌이 따르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선하게 살아가려 애쓴다.
포상이 따르지 않은 노력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것이 아닌가? 할머니 같은 사람들의 그 목적 없는 의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나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진다." p.98
"그사이 몇 년이 흐를 수도 있다. 많은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길고 다른 기회들이 찾아올 것이다." p.155
"지금은 할머니의 그 허술한 '장혀'가 바로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뭘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괴로운 시간을 견뎌낸 것이 장하다는 소중한 인정이었다." p.164
요상한엘리
이름은 천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글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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