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오이가지에 참외가 열려서 이것은 무슨 조화인가 싶어 글로도 썼던 적이 있다.
휴가를 다녀오니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정체 모를 그 열매는 참외였다. 모습만 참외이고 동그란 오이인 줄 알았는데, 참외였다니!
그런데 생각해 보면 동그란 오이인 줄 안 우리가 너무 순진하거나 무지했던 것은 아닌지 실소가 나온다.
아무튼 우리 가족 모두 충격에 빠졌다. 분명 오이 씨앗으로 구입했고 오이인 줄 알고 심었는데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쩐지 수상하기는 했다. 저 열매를 따서 배를 갈라보니 참외 씨앗 같은 것이 알알이 박혀 있는데 맛은 오이 같아서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며 웃어넘겼던 기억이 있다. 어느 분이 그 옛날에 개구리참외 같다 하시며 의견을 주시기도 했는데, 진짜 참외가 맞았다.


진짜 참외가 맞다
그러고 보니 잎 부분이 참외는 끝 부분이 둥글게 굴려 있고, 오이는 끝부분이 뾰족하게 각져 있었다. 이런 디테일한 것까지 알리가 없었던 초보 농부인 우리는 설왕설래하며 온갖 추측을 했다.
신통방통하게 우리에게 와 준 귀한 참외는 풋풋한 연두색을 벗어버리고 노란색을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 밭에 이제 과일도 열린다며 기쁘기도 했다.
화려한 신고식을 마친 참외는 잘 익은 것으로 하나 따서 식구들이 한쪽씩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생각지도 못한 것에 기쁨이 있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복병처럼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인 듯하다.
그래서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게 일희일비하며 금방 끓었다 식는 양은냄비처럼 행동할 때가 얼마나 많나 되돌아본다.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것에도 기쁨을, 감사를, 귀함을 느끼고자 노력해 보지만 이 노력에도 힘이 들어가면 본래의 것이 휘발되기에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것을 누리고자 한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그렇게 되는 자연을 바라보며 섭리를 배워본다.
또한 이제 더 익어갈 참외들을 기다리며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이런 호사가 또 있나 싶어 기쁨의 군침을 삼킨다.
므니
글을 쓰며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제주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며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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