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로 호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날씨 때문이었다. 사계절이 온화하다 보니 다양한 식물과 나무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본 호주는 사방이 식물과 나무로 둘러싸인 자연 천국이었다. 푸른 하늘 아래 식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자연환경이 매일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에는 작은 식물에 더 눈이 가고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이건 어떻게 여기서도 잘 자라는 걸까? 이 식물은 이름이 뭘까? 이건 실내에서도 잘 자랄까?'
식물에 대한 궁금증이 늘 앞섰다. 내 베란다에 놓인 작은 화분 속에 살아가는 식물에 심취해 있던 습관 때문이었을까. 숙소 뒷마당에 심겨 있던 대형 몬스테라가 길에 널린 나무들보다 더 신기하고 탐이 났다.
하지만 점점 식물과 자연에 익숙해질수록 자연스레 나무보다는 숲을 보게 되었다. 호주에서는 내가 그 작은 화분이 되었다. 화분에서 살아가는 식물보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가 훨씬 많았다.
내가 식물을 보러 가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그 도심 숲을 여행하는 작은 인간이었다.
식물과 내가 반대의 입장이 된 것 같았다.
식물은 정말 어딜 가든 많았다. 숙소 정원에도, 거리에도, 산과 바다에도 많았다. 자연 속을 걷는 것이 너무 좋았다. 포용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에 2만 보를 걸어서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아도 다음날에 또 기어코 배낭을 메고 걸었다.
멜버른에서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숲 트래킹과 해안 도로 트래킹을 경험한 후로 자연 트래킹에 더 매료되었다. 여행 6일 차에 시드니로 이동해서 간신히 여독을 푼 후에 해안길을 따라 또 걸었다. 숙소가 있는 쿠지 비치에서 출발해 본다이비치까지 걸었다. 5km 정도를 천천히 쉬어가며 걸었다.
가이드가 없으니 내 속도대로 걸을 수 있어서 편안했다. 어깨에 둘러멘 가방과 피로가 누적된 내 몸은 무거웠지만 왜 그렇게 자연 속에서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생각해 보니 자연은 내게 뭔가를 요구하지 않아서 마음이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연 속에서 나는 그냥 숨만 잘 쉬고 걷기만 하면 충분한 존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뭔가 해내야 하고 남보다 뛰어나야만 인정받는 시스템 속에 살아간다. 마음과 머리와 몸이 온전히 쉬어본 적이 언제였나.
일상에 돌아온 나는 다시 예전의 마음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쫓기고 불안하다. 인천 공항에서 맡았던 공기 속 쾨쾨한 매연 냄새를 복선으로 일상에는 나를 지속 가능한 불안 요소들이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셀프 처방을 내리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자연 속에 파묻히는 일상을 되찾기로 했다. 트래킹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르막길에서도 헉헉거리는 나에게 특약 처방일지도 모르겠다. 숨만 쉬어도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을 긴 호흡으로 가져가고 싶다.
정글라
<어쭈구리 식물 좀 하네> 저자. 식물로 재밌는 컨텐츠를 만들며 살아가려고 노력중입니다 jungla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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