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읽기' 중이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수직적 관계성에 중심을 둔 혈연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면, 7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내게 무해한 사람>은 수평적인 어린 친구, 연인드릐 순수한 감정, 미숙한 단절에 관한 이야기다.
최은영의 섬세한 감정짚기는 여전했다.
언제 이런 마음을 쓸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p.29
"기다림은 언제나 가슴이 뻐근할 만큼 고통스러운 즐거움이었다." p.98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p.99
""그 기도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 기도들은 기도 나름대로 계속 자기 길을 가는 거지. 세상을 벗어나서."" p.100
"모래에게는 모래만의 중력이 있었다." p.111
"왜 나는 생각하는 대로 말하지 못하고 슬퍼도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으로 네 옆에 앉아 있을까. 이런 내가 너에게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지." p.133
"그 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p.158
"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변형될 뿐. 산화되어 재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물질은 아주 작은 부분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 그 과학적 사실은 어린 나에게 세상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다정하게 다가왔었다." p.162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겠죠. 어쩌다 저런 인생 살게 됐나 싶을 거예요. 근데 있잖아요. 최선을 다했던 거예요. 우리 모두. 순간순간. 그게 최선이었던 거예요. 포기하지도 않은 거예요."" p.163
"나는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후 몇달을 보냈다." p.174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조건에서 굴린 구는 영원히 굴러간다. 언젠가 네가 한 말을 난 종종 떠올렸어. 영원히 천천히 굴러가는 공을 생각했어. 그 꾸준함을 상상했어. 이상하게도 눈을 감고 그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여서." p.179
"진희는 왼쪽 가슴에 오른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안에 있는 것들이 쏟아지지 않게 막아내야 하는 것처럼." p.197
"무너진 마음의 조각조각들이 날카롭게 일어섰다." p.205
"미주는 자신을 안타까이 보는 무당의 그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얼굴 앞에서 거스를 수 없는 슬픔을 느끼니까.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 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p.208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버린다. 검고 텅빈 상자에서 흰 비둘기가 나왔다가도 마술사의 손길 한번으로 사라지듯이." p.223
"천둥은 하늘이 아니라 땅이 우는 소리 같았다." p.261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p.274
"나는 하민에게 안겼다. 그렇게 그녀를 안고 작별인사를 해야 했지만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 사람은 운다." p.296
요상한엘리
이름은 천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글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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