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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으로 찾은 엄마
오렌지23. 09. 30 · 읽음 186

 환갑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수영이다. 집 근처 청소년 수련원에서 다른 사설 수영장의 거의 반값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수영시설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고, 엄마는 수영장에 오픈런으로 등록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등록 경쟁도 치열했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해수욕장 인근 마을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태생이 바닷사람이라 어릴 때 별명이 물개였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당당한 어깨로 수영 수업에 다녀온 첫날, 후기를 슬쩍 물어봤더니 엄마는 당신이 아는 수영이 아니라고 했다. 아침에 비해 약간 움츠러든 어깨였다. 우리가 어릴 때 하던 바다수영이랑은 차원이 다르다며, 개헤엄 치듯 하는 수영이 아니라고 했다. 엄마는 약간 투덜거리면서도 간만에 생기를 찾은 모습이었다.

 

 날이 갈수록 수영을 향한 열정에 불이 붙은 엄마는 수영 공부를 해야 한다며 한동안 우리 집 티비엔 유튜브 수영 강의만 나왔다. 엄마는 눈 뜨자마자 시작해 밥을 먹을 때도, 잠에 들기 직전에도 수영 강의를 봤다.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라, 귀동냥으로 강의를 듣기만 한 내가 당장이라도 수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동영상을 집중해서 보다가, 어푸어푸 영법을 따라 하는 엄마는 참 귀여웠다.

 

 최근 부모님을 수영장이 있는 호텔로 늦은 여름휴가를 보내드렸다.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었는데, 수영복을 가져가야 했기에 어쩔수없이 엄마에게 호텔에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엄마의 눈빛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엄마의 눈에서 처음 본 안광이었다. 엄마는 그때부터 신이 나 휴가 날만을 기다리며 새 수영복도 사고, 에라 기분이라며 아빠의 수영복도 새로 장만해 주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적 수학여행을 생각하며 떨리는 가슴으로 잠 못 이루던 모습 같았다. 

 막상 부모님이 휴가를 떠난 날엔 비가 왔다.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알았기에 내가 다 아쉬운 기분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에게 비가 와서 수영은 잘 했냐고 물었다. 엄마는 비가 와서 오히려 사람도 없고 너무 좋았다면서 또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날의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아빠랑 수영 대결을 한 이야기, 비가 와서 추울 줄 알았는데 수영장 물이 따뜻해서 온천 같았다는 느낌, 항상 가던 수영시설을 벗어나 처음으로 다른 곳에서 헤엄쳐본 기분. 엄마의 생기 넘치는 얼굴을 보며 진작 이런 곳 좀 보내드릴 걸 후회 되는 순간이었다.

 

 10시에 출근하는 엄마는 7시 30분에 수영장으로 출발해 한 시간을 열심히 헤엄친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하는 운동이라 엄마의 체력이 버텨주려나 걱정이 많이 되었다. 실제로 수영장을 다닌 초반에 퇴근 후에 돌아온 엄마는 그저 거실 소파와 한 몸이 되곤 했다. 이 걱정을 한 지 1년이 훌쩍 지나는 동안 엄마는 주 5일 수영장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이제는 수영장을 몇 바퀴 왕복해도 별로 숨이 차지 않는다며. 한동네에서 20년을 넘게 사는 동안 동네 친구가 없었던 엄마는 수영장에서 새 친구들도 만들었다. 쉬는 날이면 그들과 함께 카페도 가곤 한다. 고작 1년이라는 시간동안 엄마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영 등록을 위해 오픈런을 하는 엄마, 24시간을 쪼개고 쪼개 수영을 공부하는 엄마, 아빠와의 수영시합에서 이긴 엄마, 수영에 대해 말할 때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엄마. 전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처음 본 엄마의 모습이다. 어쩌면 이게 그녀의 진정한 모습이리라.

 

 나보다 30년을 앞서나가는 엄마지만,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무엇이라도 부지런히 배우려는 그녀를 보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나태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더 앞으로 나아가야지라고 다짐하며. 운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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