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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망하면 3년은 간다고 했는데 2
이야기하는늑대23. 10. 02 · 읽음 246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세상일은 정말 웃기게 돌아가 버렸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름 확고했던 의지와는 정 반대의 선택을 해 버리고 말았다. 뭐에 홀린 건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답답한 선택을 해 버렸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발암 캐릭터들의 빰따구를 후려 갈기는 선택이었다.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해 버린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문과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어는 싫었다. 싫기보다는 단순하게 외우는 형식의 학습으로는 더 이상 영어의 문법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아주 단순하게 영어를 피하기 위해선 이과를 선택하는 게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을 했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초등시절부터 적성이 선생님이었고(물론 이과라는 세부사항은 있었다.) 역사과목이라는 구체적인 대전제까지 성립이 돼 있었다. 그런 전제를 무시하고 영어가 하기 싫다는 부수적인 요인에 의해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해 버린 것이었다. 더 안타까운 건 그런 선택을 주변에서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인생 자기가 선택한 부분 스스로 책임지는 거라지만 지금 생각해도 특별한 대상은 없지만 너무 야속했다. 누굴 탓해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기에 야속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이렇다 할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 바보 같았던 스스로에 대한 야속함이 가장 크리라.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바보 같았다. 이과를 선택하고 보니 웬걸 문과와 이과의 영어 과목은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도 같았고 교과서도 같았고 심지어 시험 내용도 같았다. ‘아…, 이거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하는 영화 [신세계]에서의 최민식 님의 대사가 그냥 떠오르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렇다면 그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은 있었느냐? 그렇지도 않았다. 영어가 부족하다면 이과 학생답게 수학이나 과학 과목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했는데 딱히 그러지도 못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는 것처럼, 잘못된 과 선택에 의해 공부가 하기 싫어졌는지 마침 공부가 하기 싫어졌는데 과를 잘못 선택한 건지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선후가 애매하고 헷갈릴 뿐이다. 그저 공부 좀 한다고 건방 떨었던 기억, 영어가 싫었던 부분, 잘못된 과 선택이라는 편린들이 뒤엉켜 있을 뿐이다. 중요한 건 닭이든 달걀이든 무엇이 먼저든 간에 그 결과로 인해 고3 시절엔 확실히 공부를 안 했다는 점이다.

 

 

 

 더해서 섶을 지고 불에 뛰어 들 듯이 그 시기에 술도 마시기 시작했다. 요즘엔 신분증 검사를 반드시 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당시엔 적당히 나이가 들어 보이면 술집이고 어디고 그냥 들어갈 수 있었고 나는 아주 대놓고 노안老顔이었기 때문에 얼굴 자체가 프리패스였다. 고2, 3 시절에 이름도 ‘아지트’인 호프집에 단골이었다.(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 집 골뱅이 소면이 맛있었는데….) 고3 시절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힘들다고 야자 째고 순대에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했을 때 걸릴 거 뻔히 알면서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술을 마시러 가기도 했었다. 다음 날 당연하게도 담임에게 불려 가 머리 박은 채로 빠따를 10대 정도 맞았다. 지나고 나니 하는 이야기지만 완전 ‘미친놈 또라이’였다.

 

 

 

 주변의 실망은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졌다. 오죽하면 엄마가 빈속에 술 먹지 말라고 이왕 마실 거 안주 챙겨 먹으라고 속 버린다고 걱정을 했을까? 그렇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고3 시절을 보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출 수 있었다면 춤까지 추면서 성인이 되기 전에 성인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시절을 보냈다. 아 하하하하하하하하 어쩌면 그때 내 진정한 꿈을 이뤘는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도 밝혔지만 내 꿈은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어찌 사람의 꿈이 하나만 있으랴. 노래도 하고 싶었고 악기도 배우고 싶었고 외교관도 되고 싶었고 정치인도 되고 싶었고 대학생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커피 맛 하나로 사람을 홀리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기도 했다.

 

 

 

 일정 부분 이룬 것들도 있지만 그 끝은 제대로 본 분야는 없는 것 같다. 이런 모든 꿈을 제치고 지금 이 시점에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한량인데 돌아보면 고3 시절이 말 그대로 한량이었다. 한량이라는 게 사실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기생이나 품에 안고 풍류나 즐기면서 세상을 논하는 그런 양반내들이었다. 어찌 이리 찰떡 같이 한량 흉내를 냈는지 모를 일이다. 그거면 또 나름 된 건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고3 시절에 오죽 놀았으면 수능 보기 일주일 전까지 친구들과 술 마시고 내 집이 아닌 친구 집에서 눈을 뜬 적도 있었다.

 

 

 

 그런 고3 시절이 지나고 나니 너무 아쉽다. 그 와중에도 상황을 뒤집을 가능성은 있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가는 것처럼 해 오던 공부를 안 했던 거지 못 한 건 아니기에 그렇게 노는 동안에도 사람인지라 수능이 다가오니 순간순간 정신이 들어 공부를 다시 조금씩 했다. 공부를 조금씩 하면서 집중도도 올라갔다. 수능 보기 한 달 전쯤 에는 ‘어? 이거 조금만 하면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까지는 끌어 올리겠는데!’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언어영역(국어)은 공부는 특별히 하지 않았지만 책을 꾸준히 읽고 있었기에 항상 좋은 점수가 나왔다. 외국어영역(영어)과 수리탐구 1 영역(수학)은 별 기대가 없었지만 반타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변수는 수리탐구 2 영역(사회, 과학)인데 올라오는 집중도를 보니 남아 있는 한 달 동안 모의고사 문제집 신나게 풀면서 감을 잡으면 뭔가 가닥이 잡힐 것 같았다. 상황이 정리가 되니 머리가 맑아졌는지 놀면서도 공부를 해야 될 순간에는 조금씩 했던 것 같다.

 

 

 

 남은 한 달만 버티자. 술 마시고 노래하고 니나노 판을 벌이긴 하지만 이대로 가면 아쉬운 대로 중간은 갈 것 같았다. 그래서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그래 뭐 어차피 서울권이나 이름 있는 대학은 글렀고 체면치례나 하면 됐지, 놀면 안 되는 시기에 놀아 본 것도 뭐 나름 괜찮은 경험이잖아? 이런 아주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를 바탕으로 고3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은 과오가 있어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의 속을 썩여서(특히 부모님에게) 그런 건지 결국 벌을 받았다. 물론 이런 인과관계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저 자책일 뿐이다. 변수라고 생각했던 수리탐구 2 영역 부분이 결국 변수로 작용해 미끄러졌다.

 

 

 

 생각해 보니 일반적인 사춘기 시기에 별 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던 것 같다. 그 사춘기가 고등 시절에 그것도 아주 씨게 온 거 같다. 지나간 일들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글로 옮기고 있지만 돌이킬 수 있다면 돌이켜 보고 싶다. 그렇게 보낸 고등학교 시절도 분명 일정 부분은 내 삶에 영양분이 됐을 것이다. 좋은 과정과 만족스러운 결과를 통해 배우는 것도 있지만 그 반대를 통해 배우는 것도 분명히 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배우거니 학습효과는 확실하다.

 

 

 

 안타까운 건 시간은 한 번 지나 보내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과 삶은 리셋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20대 때 그렇게 게임을 했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시대적인 상황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PC방이 들어서기 시작한 시기가 딱 내가 고3이었던 1997년, 20살이었던 1998년이었다. 당시 PC방 열풍을 이끌었던 두 게임이 있었으니 그 유명한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였다. 아이들의 놀이 문화가 바뀌는 시점이었다. 대중적인 의미로 대한민국 게임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대적 배경도 있었지만 상황을 다시 되돌릴 수도 있고 실패하면 계속 시도할 수 있는 게임을 그래서 미친 듯이 했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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