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류바 먹는 장면이 이리 슬플 일인가
예프23. 10. 02 · 읽음 338

나에게는 고질적인 병이 하나 있는데

글쓰기에 있어서 만큼은 

나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가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속

다음 단락에서 한동안 머무르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타인처럼 여기고 있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무심했고, 더 나아가 무정하기까지 했다.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한 비참한 순간에 대해 기록하고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스크류바를 먹는 장면을 적는 식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P21

 

스크류바를 먹는 장면이 이리 슬플 일인가.

최은영 작가가 이 어려운 것을 해낸다.

 

가을이 되면 아이스크림 입에 물고 

바람을 벗 삼아

사유라는 걸 하는 게 취미인데

이제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라는

책 겉표지만 봐도 눈물이 난다.

 

나는 소설 속 화자와 달리 

글쓰기에서 만큼은 솔직하지만

현실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도망가는 편이다.

 

그래서 그렇게 곯다가 터지면

겉잡을 수 없이 우울해진다.

 

그래서 요즈음은

나를 괴롭히는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글을 쓰는 편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보다 

살기 위해서 쓰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

 

최은영 작가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소설을 읽고는 했는데

그래서 언젠가는 질릴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순간 

나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걸 보며

나는 '최은영 월드'에서 당분간 벗어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탓하면서 해소되지도 않을 억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무례하게 굴어도 다 무시했으면 좋겠다는 말

상처의 원인을 헤집으면서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

-41p

 

분명 소설 속 등장인물이 희원이에게 말하는 말인데도

나에게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을 갖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 속내를 들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고통받으며 시간을 보내느니

더 나은 일에 시간을 투자하기를 바라는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요. 교수님.

노력해도 안되는 사람도 있어요. 저처럼.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매순간 받는 상처

상처의 원인을 내탓으로 돌려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탓하는 그런 바보(?)같은 짓을

아직도 하는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나는 이런 나도 사랑한다는 것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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