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갔던 포비가 돌아오는 날
다정한수도꼭지23. 10. 22 · 읽음 95

  오늘은 구미, 여수로 3박 4일 출장 갔던 포비가 돌아오는 날이다. 패티를 필두로 모든 친구들이 한마음 되어 포비를 환영할 준비를 한다. 포비색 하얀 풍선도 불고, 웰컴 배너를 만들어 거실 텐트에 걸어둔다. 뽀로로와 로디가 갖고 놀던 공조명도 올려 본다. 따스한 색감의 조명이 어색하지 않은 걸 보니 겨울이 가까이 왔나 보다.

 

 

  루피는 방에서 쉼을 청하고 있다. 아니, 뽀로로가 자꾸 같이 놀자고 괴롭히는 통에 그마저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루피는 오늘 하루 종일 감기 걸린 몸으로 돌봄 노동에 시달려 매우 지친 상태다.  

 

  루피는 아침에 크롱과 패티 먹일 샐러드와 밥, 뽀로로 먹일 김밥을 정성스럽게 싸 주고 점심에도 크롱과 패티에게 직접 싼 김밥과 라면을 선사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로디와 놀아주다가 감기약을 먹고 '아아, 공부해야 하는데..'라며 방에 들어갔다. 세계 기독교 박물관 도슨트를 빨리 시작하라는 패티의 채근 때문이다.

 

 

 

  첫돌을 한 달 앞둔 로디는 요즘 중이염이 낫지 않아 항생제를 근 한 달째 복용 중이다. 그 부작용으로 하루에 똥을 8번씩 싸는데, 로디의 똥 싼 기저귀를 갈아주다 보면 패티(=나)는 로디의 빨개진 똥꼬에 마음이 안쓰러웠다가, 자기의 손목이 너덜거리는 사실에 착잡했다가 한다. 

 

  제주도 뽀로로 테마파크에 다녀온 후부터 첫둥이(36개월)는 타요 역할놀이에서 진화한 뽀로로 역할놀이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타요와 친구들 또는 가족 구성원(함미, 하삐, 엄마, 아빠, 자신과 동생)이 역할놀이 주인공이었고 그 역할도 놀이를 할 때마다 달라졌었다.

 

  요새는 한 번 역할이 정해지면 바뀌지 않는다. 엄마인 내가 맡는 역할은 가족놀이할 때는 '함미'(자기 자신은 하삐다. 나보고 여보~하고 부르면 나도 응 여보~하고 대답해줘야 한다.), 뽀로로 놀이 할 때는 패티, 타요 놀이할 때는 하트다. 자기 자신은 앨리스나 타요. 타요 놀이하고 있는데 자기를 하연아 하고 이름으로 부르면 발끈 화를 내며 정색한다. 아니 엄마. 타요라고 불러야지, 하면서 말이다. 꽤 까다로운 친구다.

 

    아무튼 뽀로로 놀이할 땐 특히나 한 번 정해진 역할이 바뀌지 않는 요즘이다. 나는 지난 주에도 오늘도 다음 주에도 '패티'다. 

  첫둥이가 쑥쑥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첫둥이가 배정한 역할의 캐릭터별 특징을 살펴보던 나는 빵 터졌다. 첫둥이 자신은 뽀로로, 주인공이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36개월 아동발달에 적합한 캐릭터 선정이다. 엄마인 나는 패티, 뽀로로와 동족인 펭귄 캐릭터다.할머니는 루피(뽀로로와 친하며, 요리를 잘하는 분홍 비버(?))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하삐의 역할은 크롱인데, 크롱은 뽀로로와 같이 살며 동고동락하는 사이다. 아빠는 포비(책에서 의사 역할로 나온), 그리고 동생 하민이는 로디(에디가 발명한 로봇)다. 동생한테 에디도 아니고 로봇인 로디 역할을 부여한 게 너무 웃기다.

 

  배정한 역할의 특징으로 딸의 마음을 엿본다. 나는 자기랑 비슷한 동족이고, 의사 선생님인 포비 역할인 아빠보다는 같이 사는 크롱 역할인 하삐랑 심리적 거리가 더 가까운 모양이다. 함미는 맛난 걸 많이 해 주는 다정한 친구, 그리고 동생은 의지나 선택권이 적은, 또는 적었으면 싶은 존재인가 보다.

 

  패티가 헐레벌떡 집을 정리하고 저녁 반찬을 퍼놓기가 무섭게 포비의 자동차가 아파트 정문을 통과했다는 알람이 울린다. 나이스 타이밍. 친구들은 집안의 온 불을 끄고 거실에 모였다. 크롱(하삐)이 로디(둘째)를 안고, 루피와 패티는 회색 담요를 펼쳐 양 끝을 잡고 중문을 가리고 서 있다. 회색 담요 아래로 루피와 뽀로로의 발이 다 보인다. 뽀로로는 긴장 반 기대감 반으로 양손에 하얀 풍선을 들고 서있다.

 

  띠띠띠띠띠띠띠띠. 지 이 이이익. 문이 열리고 현관 센서등이 켜지고 회색 담요를 보고 '어? 이게 뭐지이?'하는 포비 목소리가 들린다. 루피와 패티는 담요를 촤륵 떨치고 와아아아 환영합니다~소리친다. 교회 영아부에서 부르는 축복송을 합창한다. 기-쁜 날! 포비! 좋-은 날! 포비! 우리에게 포오비를 보내주신 날~ 축하해요 축하해요 축하해요~ 만남을 축하해요~!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곁에 있는 사람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곤 한다. 소중함을 자주 까먹는다. 하지만 안온한 일상과 가족이 내 곁에 있는 것 중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다.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기에, 오늘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함께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포비의 무사 귀환을 감사하고 축하하는 뽀로로와 친구들의 마음엔 기쁨이 가득했다. 

 

2023.10.2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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