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 Marché. 뜻은 프랑스어로 '시장'
지난 주말, 국립극장에서 열린 채소시장 <아트 인 마르쉐>에 다녀왔다. 언제였더라, 한국에 웰빙이라는 개념이 유행했을때 '잘 먹고 잘 살기'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때만해도 그냥 단순히 기웃거리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며 '진짜! 잘 먹고, 잘 살아남기'에 대해 고민한다.
2012년,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처음 시작한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는 '돈과 물건의 교환만 이루어지는 시장' 대신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마르쉐 : http://www.marcheat.net/)
이번에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채소시장 <아트 인 마르쉐>는 공연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였다. 시옷과 바람, 강지원, 이랑이 차례로 공연을 한다니! 솔깃했다. 시옷과 바람의 '새벽이 오면'은 글을 쓸때 한 곡 반복으로 자주 들어서 실제로 한 번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랑의 공연이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 버틸 자신은 없었다. 미안해요 시옷과 바람...! 독일에 가있는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인 '이랑'. 내 목표는 1시 50분에 시작하는 이랑의 공연을 보고, 영상으로도 담아 동생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느즈막히 출발했다. 날씨가 참 좋았다.
너무나도, 풍요로운 가을. 파란 하늘과 듬성듬성 구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누군가 준비한 먹거리, 싱싱한 채소와 과일. 웃는 아이들의 소리와 잔잔한 공연.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허브 종류의 식물, 꽃을 사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주 열리면 좋을텐데, 우리 동네에도 열리면 좋을텐데. 그러면 참 좋겠다. 직접 짜 온 가방도 있고,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이스크림도 진짜 맛있었다. 종류가 많았고, 내가 선택한 것은 토마토 바질이랑 우유맛이었는데, 유기농 어쩌고 그런 말이 써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쉽게 먹을 수 없는 맛,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던 식물들. 아무튼 정말 맛있었고, 즐거웠다. 부스가 꽤 많이 있었는데, 돌아다니다가 내 마음을 이끈것은 사과와 레드키위였다. 레드키위는 처음 먹어봤는데, 키위 중에 가장 맛있다..! 초록색 몸을 반으로 가르면 빨간색이 도로록 알전구처럼 장식되어있다. 크리스마스를 품은 과일인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돗자리에 몸을 뉘였다. 별로 한 것은 없지만, 이게 행복이지. 인생을 풍요롭게 잘 즐기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이 고추를 위해서, 래디쉬를 위해서 농부는 얼마나 밭을 살폈을까. 수확한 것들을 가지고 나오면서는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구매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본다. 보통 마트에서 장을 보면 조용히 혼자 장바구니에 담고 돌아설테지만 여기에서는 정말 오가는 대화가 있었다. "이 표고버섯은 정말 구하기 힘들어서 택배를 하진 않아요.", "올해 사과 농사가 힘들었지만, 저희 사과는 정말 맛있어요." 그런 말들을 유심히 듣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는다는 식의 말이 뻔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 말이 정답같다. 행복은 그냥 늘 있으니 발견만 하면 된다. 채소시장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진짜 삶이라는게 이렇게 한치 앞도 모른다.
어딜 봐도 쨍하다. 가을은 참 색감이 좋다. 진짜 가을이네!
채소시장의 풍요로움을 즐긴 것이 어제 같은데, 이번 주에는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됐다. 막막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더 즐거울 수 있을까? 마침 그런 생각을 많이 하던 시기이기는 했다. 고민을 좀 더 진하게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돈은 좀 없지만, 황금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적당히 즐겨야지.
'아트 인 마르쉐' 가을 시즌의 다음 일정은 11월 18일 토요일 11시~15시. 가을의 정취와 인생의 풍요를 있는 그대로 담아올 수 있는 기회이니 놓치지 말고 꼭 다녀오시기를!
최글루
이쪽이야기를 편안히 하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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