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돌보는 식물이 제법 늘었다. 어림 잡아 세어도 열 종류가 거뜬히 넘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거나 볕자리 찾아 옮겨 주는 것 따위의 일은 식물이 자연상태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이지만 잎사귀의 더께를 닦아주는 것은 온전히 사람만 해줄 수 있는 거라서 나는 이 일을 할 때 더 식물을 돌본다, 라는 효능을 느낀다. 주로 낮보다 여유로운 밤 시간 때 한다.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닦으면 내 기분도 맑게 개는 거 같다. 이 같은 이유로 자연스럽게 잎이 널따란 식물이 많아졌는데, 그중 셀렘을 가장 애정한다. 잠들기 전이나 막 일어났을 때 느긋하게 바라보려고 늘 침대 발치에 둘 정도로.
올해초, 이사한 집의 안방은 빛이 잘 들지 않아 셀렘을 두기가 좀 망설여졌는데 역시나 잘 적응 중이다. 식물은 해가 드는 데로 어느 정도 몸이 기울기 마련인데 셀렘은 좀 덜한다. 그저 양지는 양지대로 음지는 음지대로 각자 좋은 점이 다 있다는 듯 사방으로 두루두루 잎을 뻗어 내린다. 그 모양새가 마치 산발한 머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가만 보면 또 재즈 음악처럼 자유로움 속에서 제 나름의 리듬을 가지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이 같은 셀렘의 여유로운 태도와 어떤 환경이든지 적응해 내는 능력, 자유분방한 면모를 동경해마지 않는다.
데려 온 지 가장 오래된 움베르타 휘카스 또한, 각별하다. 함께 한 지 오래됐지만 냉해에 굉장히 취약하다는 사실은 올봄에 처음 알게 되었다. 겨우내 실내에 갇혀 있는 게 답답할 거 같아 모처럼 기온이 좀 올라간 날 밖에다 내다 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움베르타 휘카스의 잎사귀들이 전부 다 검갈색으로 얼룩져 몹시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래도 얼어버린 듯 해 가망이 없을 거 같기는 했지만 일단, 실내에 두고서 며칠을 애타게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새순을 내더니 금세 안정을 찾았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나 진즉에 뿌리가 다 썩어 서서히 죽어간 식물도 몇 번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에 반해 위기 상황에 잎부터 떨어뜨려 에너지를 아낀 후 상황이 나아지기만 기다렸다가 서서히 회복해 내는, 그니까 전략적으로 살아내고야 마는 움베르타 휘카스가 어찌나 대견하던지. 완벽한 위기 대응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 같달까, 안 그래도 알아서 잘 자라는 애인데 스스로 척척 해결하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식물 가게 갔다가 충동적으로 데리고 오게 된 스킨답서스, 또한 재밌는 식물 중 하나. 치렁치렁 늘어진 채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이 어쩐지 나 같아 보자마자 마음이 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치 이발사처럼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긴 줄기와 상한 잎부터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알게 되었다. 이 녀석, 첫인상을 내가 착각했다는 것. 쉴 새 없이 줄기를 뻗어나가며 새로운 잎을 내놓는 실로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때때로 이 방 전체를 점령할 기세로 화분에서 기어 나오는 거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어쩐지 나에게 꾸준히만 하면, 작은 에너지로도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 주기도 한다. 대단한 활력과 넘치는 에너지, 생기로운 인간이 아니더라도, 마치 기어가듯이 줄기를 뻗어나가는 스킨답서스처럼 말이다.
몸과 마음이 사이좋게 붕괴한 날. 몸 안에 어떤 흐름이 뚝 멈춘 거처럼 맥없이 처지기만 하는 때, 나는 마치 식물이 된 거처럼 모든 행위를 멈추고,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되도록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이파리를 닦는다. 한 잎 한 잎 어루만지듯 닦아내 주며 돌보는 것이다. 그들이 좀 더 숨 쉬기 좋도록. 그러면 이렇게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몸소 보여주면서 스스로를 돌보는 힘을 조용히 전달해 준다.
ouq
잡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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