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자라는 계절
릴랴23. 10. 26 · 읽음 70

여행을 간다고는 했지만 집에서 한없이 늘어지고 있는 지금이다. 이런 식으로 가을을 타는 거려나? 식곤증과 노곤노곤함에 아침 일찍 일어나 있는 게 힘들었다.


일이 그렇게 되다 보니 외출이 여름만큼 잦지는 않았다. 창으로 보는 바깥은 이제 나무가 조금 노랗고 카키색으로 물들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꽃은 조금 더 무성해졌다. 밖의 몇몇 나무들이 황량하게 가지만 가지고 흔들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꽃이 너무 잔뜩 폈다. 그래서 가을에 피는 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우리 집 임파첸스도 꽃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있었다.

 

그로로에서 줬던 임파첸스와 내가 직접 산 임파첸스가 종류가 다른 것 같다.

 

일단 크기가 달랐고 꽃이 피는 속도가 달랐다. 그로로에서 준 임파첸스가 작고 아담하게 이뻤다면 내가 샀던 임파첸스는 줄기도 우람하고 크기도 커서 분갈이도 여러 번 진행했다. 특히 그로로의 임파첸스가 꽃이 필 동안 내가 산 임파첸스는 꽃이 안 펴서 얘네는 꽃이 안 피는 종류인가 했다.

 

그런데도 지금 내가 산 임파첸스가 꽃봉오리가 드디어 맺혔다. 가을에 피는 애들이 아닌 것 같은데 집이 따뜻해서 그런가 곧 꽃을 볼 수 있어보인다. 풀만 무성해서 꽃이 피는 게 맞는지 미심쩍은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물을 주고는 했는데 꽃이 피는 것 같아서 안심했다.

 

가을이 되니 이렇듯 임파첸스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가을은 무럭무럭 농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던가, 꽃도 그렇고 나도 소리 없이 성장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고 일어나면 쑥 자라있고 어느 날 거울을 바라보면 꽃이 잔뜩 펴 있겠지. 마침 내 머리색은 가을처럼 노란 벼가 고개를 숙인 색상이었다. 가을에 들어오는 오후의 햇빛은 조금 더 노랗고 채도가 낮게 느껴진다. 조금 잠이 솔솔 오는 기분으로 책도 읽고 글도 써본다. 가을은 잠은 오지만 책을 읽는 계절이어서 조용히 소리 없이 모든 게 무르익어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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