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기는 확실히 낮과 달랐다. 가로등 조명이 비추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사색을 했다. 아파트 베란다와 창문을 올려다보니, 저녁식사를 차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상상됐다. 음식의 향기가 밤바람에 실려와 후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밤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놀이터를 지나치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건너편 호프집과 편의점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더 집중이 됐다. 문을 여닫는 사이로 호프집 실내의 손님들의 떠들썩한 모습과 화기애애하게 대화 나누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대학시절 호프집에서 과모임을 했던 추억이 생각났다. 저녁을 먹지 않고 갔다가 생맥주 500CC 시켜놓고 치킨과 골뱅이 소면을 과절친과 눈치 없이 푹풍흡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대학시절만큼 젊음의 자유를 누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며 관심 없던 과공부에 지치고, 갑갑했을 때 영화감독 같은 예술적인 직업을 꿈꾸기도 했다.
시험이 끝나면 관성처럼 영화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90년대 후반은 좋은 영화와 감미로운 발라드가 많이 나와 문화적인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감성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시대는 아무리 좋은 것도 세월에 흘려보내고 기억저편에서만 머물게 했다.
등하교길에 자주 듣던 토이의 노래들, 특히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워크맨으로 들을 때마다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만들어 줬다.
대학 4학년 2학기 때, MBC에서 PD를 키우려는 듯 연출을 배우고 싶은 대학생들을 공개모집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연출했던 유명한 주철환PD와 유명 개그맨과 방송작가들과 예능 프로그램 PD들이 강사진으로 나오는 공고를 인터넷으로 우연히 보고 지원했다.
다행히 통과돼서 용인의 한 대학에서 2박 3일 연수를 받았는데, 내 생각과는 방송국 현실의 괴리는 컸다. 회식이 많고 인간관계를 잘 해야 하고, 술을 잘 먹고 2차, 3차까지 갈지도 모른다고 PD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내성적인 난 충격을 받고 이튿날 이른 아침, 연수받던 대학 기숙사에서 야반도주하듯 짐을 싸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얼굴이 상기돼서 온 나에게 엄마는 왜 갑자기 왔는지 다급하게 물어봤다.
“ 소영아, 너 방송국 PD되고 싶다고 연수받으러 간거 아니었어?”
차마 엄마한테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었고, 갑자기 하기 싫어졌다고 말했다.
인생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참 많다. 나와 맞지 않는 세상을 포용하고, 감수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풋풋했던 대학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남들이 보기에는 잘 나가보였겠지만, 마음속에 많은 불안과 미래의 불투명한 청사진으로 마음 앓이를 많이 했다. 연예인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강의실에 나타나면 웅성웅성 분위기가 남달랐던 그 때의 내가 떠오른다. 전공 교수님들이 내가 경청하다 노트에 필기하면 흘끔흘끔 쳐다봤던 아련한 기억들이 맴돈다.
꽃과산책
에세이, 동화책, 소설쓰는 짙은감성작가! 저서로 <그림동화 위니와 달비의 마법일기>,< 풍경이 있는 모든 순간> 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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