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구황작물 인가 싶었습니다. '감자를 예쁘게도 심어놓으셨네, 얼마 인가요?' 물었지요. 돌아온 가격에 놀라 '아아 그렇군요'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속으로 '대체 뭔데 저렇게 비싸지?' 했습니다. 영락없는 감자였습니다. 그 위에 올라온 동글동글한 귀여운 잎들은 제외하고요. 이 친구가 무척 궁금해졌지요.
그의 이름은 "스테파니아 에렉타".
(왼쪽부터 스테파니아 노바, 오니소갈룸 사르디에니, 스테파니아 에렉타, 필란투스 미라빌리스)
아프리카 식물로 알려져 있지만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호주의 열대우림에서도 자생합니다. 요즘엔 가격도 저렴해져서 집에 들이는데 부담도 없지요! 통통한 감자는 괴근으로 양분이 저장되어 있는 덩이뿌리랍니다. 심을 때 괴근을 땅 속 깊이 심는다면 습기에 의해 금방 물러질 수 있으니 반드시 괴근의 2/3 이상이 보이도록 식재하셔야 해요. 땅의 과습에는 민감하지만 공중습도는 좋아한다고 합니다. 빽빽한 열대우림 속 누군가의 그늘에서 잎을 살랑이며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떻게 키워야 할 지 감이 오실 거예요. 식물을 잘 키우려면 그 친구의 원산지 생태를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답니다.
1. 스테파니아 에렉타 / Stephania Erecta
-광량: 밝은 간접광
-물주기: 봄~가을 토양이 말랐을 때, 잎을 모두 떨군 겨울에는 한달에 한번 조금씩
-적정온도: 20~27도, 15 이하는 동면
-주의사항: 독성이 있어 반려동물, 어린이 주의
요 며칠 추워진 날씨에 겨울잠을 자려는지 저희집 에렉타는 잎을 모두 떨궜습니다. 한 해를 열심히 보내고 벌써 내년을 준비하는 에렉타가 웬지 저보다 어른스럽네요. 어떤 분은 꽃 구근을 보관하듯이 흙에서 캐내 신문지로 싸서 보관하시기도 합니다. 에렉타를 만나고 처음 나는 겨울이라 한달 주기로 물을 조금씩만 주며 지내보려해요.
2. 오니소갈룸 사르디에니 / Ornithogalum sardienii
-광량: 밝은 간접광
-물주기: 가을~봄 구근이 쪼그라들었을 때, 여름에 꽃이 진 후에는 휴식이 필요하므로 물주기를 줄인다
-적정온도: 20~27도, 5 이하는 냉해
-주의사항: 독성이 있어 반려동물, 어린이 주의
작은 양파 요정같기도 하고 포켓몬 뚜벅초 같기도 하고요. 뜨끈한 오뎅탕에 들어가 있는 유부주머니 같기도 합니다. 오동통한 구근 위로 삐죽삐죽 초록 털이 매력적입니다. 여름에는 작은 하얀 꽃들을 피운다고 해요. 내년 여름에는 저는 이 친구의 깜찍함에 잔뜩 취할 예정입니다 후후!
사르디에니의 구근은 알부카 처럼 분지(나뉘며 번식)하므로 취향에 따라 군락을 만들어 사르디에니 파티를 열어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오니소갈룸은 사르디에니도 있지만 리톱소이데스나 베둘레햄, 토르토슘(토르투오섬), 오즈미넬룸 등의 다양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잎의 모양도 꽃의 색도 모두 달라서 언젠가는 오니소갈룸 대가족을 키워보는 날을 꿈꾸며 장바구니에 하나둘씩 넣어둡니다.
3. 필란투스 미라빌리스 / Phyllanthus mirabilis
-광량: 밝은 간접광
-물주기: 봄~가을 토양이 말랐을 때 혹은 낮에도 잎을 접었을 때, 겨울에는 한달에 한번 조금씩
-적정온도: 23~27도, 10도 이하는 냉해
-주의사항: 독성이 있어 반려동물, 어린이 주의
밤이면 붉은 잎을 모두 접어 곤히 자는 모습이 인상적인 필란투스 미라빌리스 입니다. 이 친구도 아프리카 식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지가 원산지입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나 절벽에 서식한다고 해요. 공중습도가 높은 여름과 건조한 겨울을 나는 친구지요. 오동통한 몸에 양분과 수분을 저장하니 땅의 과습에 취약합니다. 배수가 잘 되는 흙에 심어 자주 들여다보기 필수! 저희집 필란이는 곧 잎을 떨구고 동면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잠을 푹 잘 자야 봄에 예쁜 잎들을 내어주겠지요? 잠자는 숲속의 필란공주, Good night, 아니 Good winter night!
4. 스테파니아 노바 / Stephania Nova
-광량: 밝은 간접광
-물주기: 봄~가을 토양이 말랐을 때, 겨울에는 한달에 한번 조금씩
-적정온도: 23~27도, 10도 이하는 냉해
-주의사항: 독성이 있어 반려동물, 어린이 주의
고향은 태국 등의 동남아 입니다. 스테파니아 에렉타의 둥근 구근과 달리 노바의 구근은 기암괴석 처럼 생겼습니다. 작고 동글한 에렉타의 잎보다 사이즈도 더 큽니다. 제가 모시고 있는 노바 어르신! 물론 아직 어리지만 생긴건 지혜가 가득한 어르신 느낌이니까... 내년에는 손바닥 만한 잎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겠지요?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괴근, 구근 친구들은 몸이 곧 뿌리이자 창고입니다. 물론 뿌리가 나기는 합니다만, 뿌리가 없다고 죽지 않습니다. 그만큼 단단한 기반을 가졌거든요. 쉴 때 쉬고, 놀 땐 놀 줄 아는 확실한 성격이 부럽기도 하네요. 괴근구근 친구들을 닮아 웬만한 타격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마음을 가지고 싶습니다. 아, 식물들은 정말 멋진 존재들입니다! 자주 들여다보면 저도 언젠가 그들을 조금 닮아있지 않을까요?
사농
사색하는 농부 사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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