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그저 빛의 삼원색
원상연23. 11. 14 · 읽음 61

컬러링북을 가지고 놀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라면 은은한 색들을 좋아했겠지만 그날따라 유독 붉은색 푸른색 같은 원색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빛'에 대한 글을 쓰려고 생각 중이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빛의 삼원색, 붉은색, 초록색, 파란색은 미술시간에도 과학시간에도 배운다. ‘눈부심, 햇빛, 광채’ 등 빛에 대한 한정된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빛에 대한 마인드맵을 하던 도중 빛의 삼원색이 떠올랐다. 그리곤 문득 빛의 삼원색에 해당하는 색들 하나하나에 대한 서사를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에게 사연을 부여하는 것이다. 붉은색, 초록색, 파란색은 누군가에겐 그저 빛의 삼원색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사연과 서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그저 빛의 삼원색’이란 제목의 시를 짓기로 했다.

 

시를 먼저 소개하고 시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누군가에겐 그저 빛의 삼원색 - 紅에 대하여]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요즘 누가 성냥을 사냐는 물음은 사양할게요 
성냥이 아니라도 좋아요, 저라도 사주세요

 

이렇게 아무것도 팔지 못하면
오늘 밤, 또 
추운 길거리에서 혼자 얼어갈 거예요

 

백린의 무지막지한 연기 속에서 춤을 출게요
환영 속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그 환한 웃음을 보일게요

 

성냥의 황홀함은 제 곁에서 아른거릴 테니
당신은 저로 인해 황홀하기만 하셔요
성냥은 제 유일한 빛이나 
저는 당신이 가진 수많은 빛 중 하나겠죠

 

찰나에 보이는 당신들의 표정을 
난 알 수가 있죠
상관은 없어요
그게 동정이든 연민이든 사랑이든

 

어찌되었건 난 영원히 紅일 뿐이거든요

 

그러니 무엇이든 사주셔요 
아니, 사세요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작고 여린 이 몸의 숨이 빛을 잃기 전에

 


오늘 소개할 색은 ‘붉은색’이다. 붉은색의 시는 성냥팔이 소녀와 홍등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홍등가에서 성냥도 팔고, 자신도 파는 어떤 여인이 길거리의 사내들에게 건네는 듯한 형태를 가진 시이다. 성냥이든 자신이든 무엇이든 사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은 백린의 연기 속에서, 환영 속에서 춤을 추고 웃음을 보인다. 이는 성냥팔이 소녀가 아무도 사지 않는 성냥불을 키며 여러 환영들을 보는 것에서 착안한 표현이다. 가벼운 여인의 말투와 대비되게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상황은 어둡다. 물론 이를 의도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시라 나름 애정하는 시이다. 이 시에 대한 반응이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의 생각 또한 궁금해서 짧게나마 소개한다.

4
원상연
팔로워

무겁고 쓸쓸하고 담백하면서, 그 어두움마저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써내려갑니다. 홀로 찾아와 뜨겁게 위로받고 가세요.

댓글 4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전체 스토리

    이런 글은 어떠세요? 👀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