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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카페 생활
merry23. 11. 15 · 읽음 114

추워지면 실내 생활을 즐긴다. 한국에서 좋아하던 일 중 하나는 카페 가기였다. 카페를 고르는 기준은 꽤 까다롭다. 주인장의 취향이 돋보이는 인테리어(너무 깔끔하거나 세련되지 않은), 좋은 음악(좋은 책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디카페인과 오트밀크 옵션, 맛있는 커피, 편안한 자리, 아늑한 조명, 괜찮은 화장실, 그림이든 글이든 작업을 하는 데 눈치보이지 않는 곳.

 

베를린에 오고 난 뒤로 이 조건을 충족하는 카페를 찾지 못했다. 이 도시에서는 카페에서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 할 수 있는 카페를 찾는 것이 꽤 어렵다. 대부분 호로록 먹고 마시고 일어나는 분위기랄까.. 그래서 구글맵 리뷰를 샅샅이 뒤져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카페를 찾아내야 하고 그 와중에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가진 곳까지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서 카페가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그러던 월요일,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 작업을 하기로 하고 친구가 구글맵으로 찍어준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 가는 길에 아주 마음이 끌리는 카페 한 곳을 발견했다. 카페 앞 작은 테이블 몇개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왠지 구리구리한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 언젠가 꼭 가보고 싶어서 급히 구글맵에 가장 가까운 카페를 검색한 뒤 가고 싶은 곳 목록에 저장해두었다. 아마 이 카페가 나를 사로 잡은 것은 여러 개의 작은 초록색 조명과 간판없음 때문인 것 같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했는데 노트북 사용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다 싶어서 친구들과 함께 내가 찜해둔 카페로 향했다. 카페 문앞에는 주말에는 노트북 사용 금지라고 쓰여있었다. 그럼 오늘은 괜찮군요.. 운명이었다. 카페 안은 정형화 되지 않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가득했고 작은 공간에 작은 테이블들이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쇼파도 있고 바처럼 되어있는 테이블도 있고 쿠션이 있는 의자도 없는 의자도 있다. 난생 처음 듣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어둡고 아늑한 조명이 여러 개 달려있다. 어두운 날에는 어두운 대로 카페 내부도 어두워진다. 실내에 거울 없는 화장실이 있다. 테이블에는 잔뜩 시든 꽃들이 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적어둔 종이는 손으로 직접 쓰고 꾸미고 오래 되었는지 너덜거린다. 멋을 내지 않아도 멋진 직원들이 있다. 여러 종류의 디저트와 비건 옵션 디저트도 있다.  혼자 온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네명 자리의 테이블에 전세낸 듯 앉아 노트북으로 무언가 열심히 한다. 테이블 회전이 잘 돼서 오래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다.

 

이 카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3일 연속 이 곳에 출근했다. 베를린 한적한 골목 간판 없는 카페에서 음악 검색으로도 안 나오는 요상하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옆에는 이미 커피를 다 마신지 오래 되어 직원이 커피 잔을 치운 테이블에서 두 사람이 앉아 체스에 열중하고 있다. 나는 항상 디카페인 오트밀크 플랫 화이트를 시킨다. 첫째 날엔 샌드위치, 둘째 날엔 크로와상, 오늘은 브라우니와 함께 먹고 마신다.

 

카페는 내 생활의 중요한 일부다. 한국에서 좋아했던 카페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이제 베를린에도 나의 까다로운 카페 만족도를 충족해줄 수 있는 곳이 생겼다. 한국의 소중한 사람들이 베를린에 놀러 온다면 이 곳을 꼭 데려올 것이다. 빈 것은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이렇게 점점 적응되어 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번 겨울 아지트가 되어줄 공간을 발견해서 아주 기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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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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