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는 추웠다. 분명 투명한 유리창이 막아주고 있는데도 거실에서 베란다로 나갈때면 찬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발을 동동동 거리며 화분들이 있는곳으로 가본다. 추워도 꿋꿋이 고개를 들고 있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밤새 얼었다가 낮에 녹았다가 하면서 잎이 축 쳐진 녀석들도 보인다. 그리고 그 녀석들 중에는 반데라들도 있었다.
어느순간부터 반데라들이 성장을 멈췄다. 아니..멈췄다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고 거북이 수준으로 느려졌다고 하는게 정확한것 같다. 본잎이 이미 키가 클때로 컸는데 옆으로 벌어지기까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니까. 그리고 메인줄기를 보니 이미 목질화가 시작된것같기도 하고..꽃을 그로로팟 통해서 겨우 두번째 키워보는 나는..멘붕에 빠졌다.
그래서 그로로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려놓고 일단 할 수 있는걸 하기로 했다. 바로 바람막아주기 작전.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으로 들일 수 없으니 찬바람을 막아줄 방패막이 필요했다. 그때 눈앞 포착된 무언가. 바로 분리배출을 위해 모아두었던 스치로폼 박스였다. 오..저거다..! 높이를 보아하니 대충 맞는것 같아 보여 바로 움직였다.
음..생각보다 괜찮네? 나중에 할 거 없을때 아이들이랑 스치로폼 꾸미기나 해볼까. 색칠도 하고 스티커도 붙이면서. 그런데 남편이 한마디를 건넨다.
"위로 바람이 슝슝 들텐데 효과가 있겠어?"
맞다. 머리가 시릴텐데..지붕역할을 해줄 무언가를 찾아보자. 레이더망 가동! 그때 스치로폼 옆에 가지런히 있던 건강식품 박스 발견! 이번엔 너로 정했다! 처음에는 위에 덮었더니 반데라 위에가 눌리는것이 아닌가. 오 마 이 갓! 안돼! 그래서 테두리에 걸치게끔 올려놓으니 아주 딱맞았다. 이햐~너희들은 식물과 함께할 운명이었어! 하고 돌아서는데 엄마가 베란다에서 도통 들어올 생각을 안하니 첫째아이가 나와서 말을 건넸다.
딸 - "엄마, 뭐해?"
나 - "엄마 식물들 집 만들어줬어"
딸- "오~~~우리엄마 환경지킴이 도장 찍어줘야겠다"
나 - "크크크크크"
기분좋게 딸이랑 손잡고 거실로 들어왔는데 순간 머릿속에 문장하나가 스쳤다.
"라벤다는 자기 향에 질식해 죽을 수 있어요."
가슴이 철렁. 바로 다시 베란다로 나갔다. 어리둥절해하는 딸의 얼굴을 뒤로하고. 가뜩이나 향이 강한 녀석들인데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바로 질식하겠다는 생각에 뚜껑을 바로 열었다. 음..어쩌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이런 모습으로 마무리를 했다.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없는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사진을 보니 저 박스가 햇빛을 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물키우는거 참 쉽지 않다. 많은 생각과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같이 공존하기로 결정한 생명들이기에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본다. (결국 답은 식물등밖에 없어보이지만..)
조만간 조금씩 모아둔 뽁뽁이를 개시해야겠다. 역시 추위에는 사람이나 식물이나 뽁뽁이 만한게 없지!
파초청녀
커피를 사랑하고, 환경지키는것에 관심이 많으며,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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