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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에 조개를 캐러..
힙스쿨러23. 11. 29 · 읽음 143

 찬바람 불 때 생각나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호호 불어먹는 붕어빵

따듯하고 부드럽게 꼴깍 넘어가는 핫초코

매캐한 장작 탄내가 감도는 군고구마

 

내 경우에는 아무래도 갑각류가 땡긴다..

가을이 온다 싶을 때부터 대하도 먹어줘야 하고,

요즘같이 본격 추울때는 대게도 뜯어 줘야 하고,

무엇보다 조개 넣고 끓인 뜨끈한 국물에

칼국수를 넣고 끓여줘야 맛이다.

 

약간 그 뭐랄까,

겨울잠 자기 전 열심히 음식을 퍼먹는 동물처럼

겨울채비로 뭔가 진기진 것을 먹어줘야 하는 듯이..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의 조개 칼국수 같은 것이

찬바람 불 때면 더욱 간절해지는데..

 

발단은 우연히 보게 된 인스타 릴스였다.

아이랑 가기좋은 갯벌 체험지가 올라왔고,

그냥 캐는데마다 조개가 우수수 나온다길래

나는 그만 마음을 빼앗겼다...

 

추운 날씨에 곁들일 뜨끈한 조개탕이 땡겼다.

 

'겨울채비 별 거 있나, 뜨끈한 조개탕 한사발이면..!'

 

갯벌을 가야 했다.

겨울채비 몸보신용 조개탕을 위해.

아 물론 슈퍼가서 조개 사오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뭔가 하나에 꽂히면 

곧장 그 낭만을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

직접 캔 싱싱한 조개를 양껏 먹고 싶었다.

 

게다가 겨울의 갯벌이라니..!

12월부터 휴지기에 들어가 이듬해 3월에 연다는데

지금은 11월의 마지막주...!

이것은 신이 내린 막차....! 

곧바로 릴스에 나온 갯벌체험장을 확인하고

신랑 휴무에 맞춰 일정을 잡았다.

 

충남 서천... 

예상시간 2시간 41분...

손바닥 만한 휴대폰 속 네이버 길찾기 지도로

내 엄지손가락 한마디 남짓한 거리...

 

못먹어도 고 ! 를 외치며

전 날 저녁 비장하게 애들 약병에 맛소금도 담았다.

애들 장화도 챙기고...

 

그런데,

 

생각보다 서천은 멀었고,

오랜 이동시간에 지쳐 멀미하느라 기력이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갯벌 초보였다.

난생 처음 뻘에 박히는 정강이가 깊어지자

순간 이 곳에 내 다리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것인가

이러다 밀물 들어오면 이대로 바닷물에

조개와 함께 묻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졌다.

 

당황스러웠지만 열심히 갈퀴질을 해 보았다.

차진 찰흙에 이쑤시개 쑤시는 마냥

광활한 서천의 갯벌에는 1%도 타격이 없었고

애초에 엄한 데를 판 탓인지

초보가 한 올 한 올 끄적거린 뻘 속엔 조개가 없었다.

게다가 이 낯선 갯벌의 바닷바람에 볼은 터가고..

 

..그만 접을까..했던 그 순간,

내 갈퀴질에 굵은 동죽 한마리가 걸렸다.

 

뻘흙에 묻혀 있다 알싸한 바깥공기를 쐬자마자

찌익 하고 갈퀴에 물총을 씨게 갈기는걸 보니

아주 싱싱하고 힘 좋은 놈이었다.

역시, 겨울엔 조개탕이지!

너, 내 먹이가 돼라!

 

뒤늦게 찾아 온 손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갯벌을 팠다.

뭐.. 삽질에 비해 조과는 썩 좋지 않았지만.

 

양이 얼마 안되니 탕은 안 되겠고,

간만에 신랑이 솜씨 발휘해

봉골레 식으로 볶아서 국수를 말았다.

 

맛있다.

갯벌 초심자의 고진감래 맛이었다.

겨울철 동죽은 탕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이렇게 겨울 갯벌 낭만 실행 완료.

 

하지만 이 다음엔 그냥 사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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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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