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에까지 쓸모를 찾는 건 미친 짓이 아닌가. 머리가 터져 죽을 일 있나.’라고 제목의 생각을 했었던 이전의 나를 비판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것도 일단 멈추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원래 내 관심사는 이쪽이 아니었다는 걸 기억한다. 그러면 또 어떤가. 지금은 아니게 됐는데.
시간을 단축시킬 좋은 방법을 찾고 나서도 나도 그 방법이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납득했다. 그럼에도 내가 원래 쓰던 방법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결국은 내가 썼던 그 방식이 조금 더 빠르게 흘러가도록 업그레이드되었다면?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사서 하는 고생을 즐기는 사람인 건가? 더 간편한 방법을 찾았는데 왜 그쪽으로는 손이 안 가고 시간이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내가 기존의 쓰던 방법만 더 업그레이드되는 것인가. 왜 또 나는 그걸 하고 있고, 물론 기존의 방식보다는 더 나은 방식이 된 건 맞는데 왜 나는 그게 만족스러운가.
효율이 좋다는 말은 내게 잘 맞아서 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 그들이 말하는 걸 해보는 건 좋지만 어쩐지 몸에 끼는 옷을 입은 것 마냥 불편하다면 그건 내 옷이 아닌 거였다. 빠르고 쉽게 가는 것과 내 목적성이 일치한다면 습득해도 좋겠지. 해보고 결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면 하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그럼으로 기존의 방식이 왜 나한테 맞았고 내가 왜 그걸 진행해왔는지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으니까.
우리가 놓치는 건 색다르고 새로운 게 아니라 잘 알고 있는데 잊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건 사소하지만 귀찮은 작업이라 여기고 하지 않고 넘기는 것들이다.
사소하지만 귀찮은 디테일을 살리고 포인트를 잡아내고 사람들은 잘 하지 않지만 나는 하고 있는 그런 것들이 쌓여서 큰 차이를 만들었다. 큰 것은 작은 것에서 온다는 말이 있었다.
얼마 전에 배우 최수종 씨의 일화를 들은 것이 있는데 그는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대본집에 장음과 단음을 표시를 일일이 했었다고 했다. 대사처리를 하는 데서 그 조금의 소리의 차이에서 가벼움과 깊이의 차이가 확 달라진다는 걸 영상을 보고 느꼈다.
어떻게 보면 그걸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다들 안 하는데 나도 안 해도 되고 귀찮다고 넘기는 일들이 많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같이 살지 않는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께 전화도 자주 하고 방문을 하는 일이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 일, 어떤 글을 읽든 간단하게 느낀 점을 적어보거나 댓글을 달아보는 일 아침이 지났어도 간단하게 이불 정리하고 방 청소를 하거나 환기를 시키는 일 정도가 생각난다.
이걸 다하기에는 어쩌면 너무 많으니까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러니 다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모든 걸 할 수는 없어도 자신한테 제일 쉬운 거 한두 개씩은 시도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쓸모없는 일과 별 볼일 없는 일, 보상이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하지만 그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게 내가 생각보다 꽤 내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귀찮아서 넘기는 일들을 가볍게 처리하고 나면 또 그게 생각보다 쉽다는 걸 느낀다면 점점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연계해서 하고 싶고 해보고 싶어지는 게 많아지고 흥미가 생기면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가볍게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그게 쌓이면 실력도 점점 견고해지니까 좋고 또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내 가족에게 친절해지는 건 나한테 좋은 영향을 끼친다. 내가 나한테 뿌듯함을 느끼고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늘여간다는 건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이렇게나 많은 걸 했었나?’ 싶어지는 순간이 분명 올 거다.
릴랴
자기가 쓰고싶은 글을 쓸 뿐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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