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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제는 우울해서 식물을 질렀어요
URang23. 12. 06 · 읽음 135

 

말 그대로랍니다. 

 

막 안 좋은 일, 힘든 일이 생겨서라기 보다는,

 

하루하루 소소하게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까

 

어느 날 부터인가

예전의 나였다면 그러려니하고 넘어갔을 일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기분도 더 나빠지고

편두통까지 지끈지끈 지속되더라구요. 

 

물먹은 솜마냥 몸도 온종일 축축 늘어지구요. 

 

그래서,

 

소심예민뒤끝 3박자가 완벽하게 버무러진

트리플 A형이면서 INFJ로서

더 이상 찌질하고 한심해져가는 나 자신을 두고볼수 없었기에

 

기분전환을 위해서 식물들을 충동구매로 와르르 질러버렸답니다(에라 모르겠다)

 

사실,

 

다육공방을 운영하고 있기에

공방 마당과 곳곳에 웬만한 다육이들이 몇 박스씩 쌓여있지만

 

제 취향은 좀 더 특이하고 흔치않으면서 개성있는 쪽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특히 구갑룡은 손꼽히게 애정하는 녀석입니다. 

 

예전에 키웠던 구갑룡입니다. 

 

 

 

 

한때,

미판매용으로 리톱스나 여러가지 아이들을 따로 키웠었지만 

대부분 공방 구경오신 손님들의 애교어택(?)에 눈물을 머금고 보내드리고

 

지금은 잠시 육아로 인해 공방을 동생에게 맡겨둔 터라

취미 원예는 일시중단된 상태였기에

어찌보면 식물 공백기로 인한 공허함에서 오는 우울감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겨울이다보니 식물을 지를 생각은 딱히 없었지만

커뮤니티에서 구갑룡을 키우고 계신 분의 사진을 보자마자 

그만 이성이 뚝 끊어져버렸습니다. 

 

원래 아프리카 식물류를 퍽 좋아했던 기억이 떠오르더니

저는 어느새 구갑룡을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담고 있더군요. 

 

기왕 지르는거 좀 더 좀 더... 하다보니

결국 장바구니가 나름 풍성해졌습니다. 

 

사실 저는 원예공방을 하면서

3-4년전까지는 식물은 택배 발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보존하기도 어렵거니와

꽉 막힌 종이박스안에 

꽉 채운 보충재 등으로 인해서

적어도 하루 이상을 꼼짝없이 숨막힌 채로 배송되어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드시 현장 픽업을 원칙으로 하다가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서 고민하던중

결국 비대면 방법인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래저래 불가능한 종류도 많지만

다른 오프라인 업종들 또한

하릴없이 온라인 판매에 적응해나가야하는 시기였기에 저도 나름 살아남기위해 노력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저 자신은 최대한 농원이나 화원에서 직접 보고 꼼꼼하게 살펴본 후에야 고르는 것을 선호하기에

지금껏 온라인에서 식물을 사본적은

이번의 지름을 제외하고는 

예전에 식충식물 질렀을때가 유일했네요. 

 

아아. 

그러고보니 그때도 충동구매였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원래 성격은 매우, 상당히 우유부단한 편이라서 

뭔가 고를때에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편입니다. 

 

정말 필요한 물건이라고 해도

적어도 이삼십분부터

옷의 경우에는 서너번 더 보고오고

1-2주이상 고민한 후에야 지르는

거참 답답하고 과하게 신중한 성격인데요. 

 

식물만큼은 당일에 바로 충동구매해버렸다는게 참 스스로 돌이켜봐도 어이없고 웃기더군요. 

 

이유는 한가지였습니다. 

 

빨리 사야 빨리 오니까요. 

 

그래서 이틀전에 질렀던 아이들이

오늘 점심때쯤 도착했다는 문자가 오자마자

바로 달려나가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숨막히고 갑갑했을까 싶어서요. 

 

...와우

 

정말이지 꽁꽁 빈틈없이 포장해주셔서 

흙도 거의 흘림없이

아이들도 거의 다치지 않고 도착했습니다. 

 

한번 보시죠. 

 

 

 

 

 

흡사 미이라마냥 둘둘둘둘 감겨있는 휴지뭉치를 끝도없이 풀어내면서

 

다시 한번 농원 사장님의 꼼꼼함과 세심함에 감탄하며 "아이고 고생많으셨네요 감사합니다"를 외쳤습니다(실제로 외쳤습니다)

 

하나하나 슬슬 풀어내다보니

한 녀석이 집(화분)없이 맨몸으로 왔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안 쓰는 화분류를 싹 치운지 얼마 안된 터라

황급히 적당한 무언가를 집안 곳곳에서 찾아헤매다가

카페에서 받아온 재사용 컵을 발견했습니다. 

 

 

 

와우. 

 

그로로에서 받은 그로로팟 박스에 담겨져있던

얍실한 모종삽 덕분에

마사토를 빈틈없이 쏙쏙 채워넣을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원예용품에 대해서 엄청나게 공부하시고 연구하셔서 만드신 패키지라는 생각에

새삼 감사하다는 마음이 물씬 피어올랐습니다. 

 

 

 

다 담고도 남을만큼 넉넉했던 마사토를

다른 화분들에도 조금씩 더 채워주었습니다. 

 

 

 

그로로팟 박스에 들어있던 스포이드도 한몫 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것보다 더 자그맣고 앙증맞으면서

은근 빽빽하게 심겨져있는 녀석들이라서

물 한컵 가득 받아와서

스포이드로 한모금 한모금 먹여주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애들 상태가 여러모로 목이 많이 말라보였는데

스포이드로 천천히 먹여주니까

꼴꼴꼴 하고 물 받아먹는 소리,

퐁퐁퐁 흙에 스며드는 소리가 들려서

 

정말이지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

혹은 힐링이란 이런 것이지 라는 생각에

정말이지 간만에 평온하고 행복했습니다. 

 

아이들 하나하나 소개해드릴까요. 

 

물론,

소개라고 썼지만 자랑입니다. 

 

 

 

먼저 제 최애인 구갑룡. 

 

아프리카 식물류 중에서도 나름 희귀식물에 속합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구근과

쉼없이 엉키며 자라나는 연약한 덩굴들이 포인트입니다. 

 

 

 

 

스피랄리스. 

 

아프리카 식물이며

뽀글거리며 자라나는 초록덩굴이 포인트입니다. 

 

 

 

 

그라노비아금. 

 

보통 다육이들 보다 첨가된 색이 특이하고 희귀하면 이름 뒤에 금 이 붙더라구요. 

 

이 그라노비아는 노랑노랑한 색깔이 첨가돼서 그런듯 합니다. 

 

저는 바글바글 풍성한 느낌의 아이가 제 공허함을 채워줬음 해서 골랐었습니다. 

 

 

리톱스(합식). 

 

아프리카 사막에서 새들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돌멩이로 위장한 모습이 특징인 아이로

아시는 분들도 꽤 있을 정도로 유명하죠. 

 

동글동글 귀여운 외모가 봐도봐도 질리질 않지요. 

 

 

 

 

테리칼라. 

 

위에 있는 리톱스 류인데요

 

사실 이 아이들은 제가 지른 녀석이 아닌데

농원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함께 보내주신듯 합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짝 정수리가 갈라진 콩알처럼 생긴 아이들입니다. 

 

 

저는 분명 4개를 샀다고 기억은 하고 있었으나

정신없이 포장을 풀어내고

포트 표면의 먼지를 닦아주고

스포이드로 한모금 한모금 꼴깍꼴깍 먹이고

이렇게 세팅까지 쫙 해놓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까

이 녀석이 알고보니 서비스라는 사실을 

진짜 방금,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혹시 몰라서 사장님께 연락드려봤는데요

서비스가 맞다고 하셔서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쳤습니다ㅜㅜㅜㅜ

 

아아 정말이지...

 

연말에 이토록 충만함이 가득하다니요....

 

 

여하튼, 

 

아프리카 식물류끼리도 기념으로 한 컷,

 

 

마치 꽃다발 같은 녀석도 단독샷 한 컷,

 

 

그리고 떼샷 한 컷. 

 

 

이 아이들은 일단 실내에서 수시로 바라보며 식멍용으로 애용할 예정이기에

틔운미니 앞에 두고

조명빛을 나눠받아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완전 무계획적으로 막 지른 탓에

화분받침도 없고

일단 급하게 큰 잡지하나를 펼쳐서 깔아둔 상태인데요. 

 

조만간 우리들의 편하고 좋은 이웃인 다이소에 가서 적당한 추가필요품들을 데려와서 제대로 다시 꾸며줄 예정입니다. 

 

특히 구갑룡의 경우에는 와이어를 설치해줘서 덩굴이 엉키지 않고 잘 자라도록 해주는 것이 시급할것 같네요. 

 

 

우리 꼬맹이도 엄마가 정신없이 세팅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꽤 오랜시간동안 조용히 지켜봐주었습니다. 

 

다가가서 슬쩍 만져보거나 엎어버릴수도 있을것같아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얌전히 구경만 해줘서 다행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의 소중하고 어여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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