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작가님의 에세이 <마시지않을수없는밤이니까요> (마디북 출간)
울쩍하고 착잡하기 이를 때 없는 요즘, 업드려 책을 보다가ᆢ
흐흐흥흐흥
옆에서 묻는다. 왜 그래?
재밌어. 아주 재밌어. 정지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야.
정지아. 이름 석자만으로도 볼 생각인데. 서평단을 신청한다는 소식에, 생에 처음으로 서평단도 신청했었다. 똑. 떨어졌지만 믄 상관?? 나는 꼭 보고야 말텐데? 책 뒤표지에는 이런 얘기가 써있다.
"만취한 원숭이가 사자의 대가리를 밟고 날아오르는 어느 초원의 밤처럼"
이런 용맹한 이야기가 나에겐 꼭 필요했다. 책장을 열고 두어장 펼치며 소름이 돋았다. 맙소사, 또 스르륵 책장이 저절로 펼쳐지고 있어! 어쩜어쩜! 정지아 작가님은 이렇게 글을 쓰실까! 나의 최애 작가님 최은영 작가, 정지아 작가님.
내가 너무 사랑하는, 정지아 작가님에게는 정말 단점이 딱 하나밖에 없다. (심지어 이건 단편과 장편을 볼때까지 전혀 몰랐다. 이번 에세이를 보며 알게 됐다.)
내가 너무 싫어하는 '존나'를 '존나' 좋아하셔서 '존나' 많이 쓰신다는 거. '젠장'!도. '젠장' 까지는 괜찮은데!!!
"위스키든 소주든 천천히 오래오래 가만히 마시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p.96
벌컥벌컥, 화를 삼키듯이 맥주를 집어삼켜서 나는 늘 불콰한 얼굴로 배꼽 빠지게 웃다 잠들었나보다. 이제 좀 천천히 마셔봐야겠다. 천천히.
"참으로 다행 아닌가? 성공할 기회가 없어 타락할 기회도 없었다는 것은!" p.138
"20세기 사회주의는 잔인한 자본주의의 기적과 같은 대안이었다. 사회주의 덕분에 자본주의는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를 마련하면서 비로소 인간의 얼굴을 띨 수 있었다." p.12
"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존재들을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이다. 데이브에게는, 그의 엄마에게는, 그런 존재가 없었을지도....아니, 그런 존재가 있었음에도 살아내기 어려운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였을지도." p.59
"술은 스트레스를 지우고 신분을 지우고 저 자신의 한계를 지워, 원숭이가 사자의 대개리를 밟고 날아오르듯, 우리를 날아오르게 한다. 깨고 나면 또다시 비루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p. 67
"기대가 없으면 아무리 높은 사람 앞에서도 굽실거릴 필요가 없다." p.129
"그러나 최선을 다해도 가난에서 쉬 벗어날 수 없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노동자는 그 선의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세상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다." p.135
"녀석은 뜨겁고 깊고 진했다. 끈적끈적, 끝도 없는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맛이었다." p.137
"A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금기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금기가 풀리자 미친 듯 한때 금기였던 것들을 향해 돌진한게 아니었을까." P.147
"선생이라면 호의를 받아들이는데도 여유가 필요함을 알았을 것이다." P.157
"벚꽃은 만개할 때가 절정이 아니다. 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 햇볕 환하고 바람 없는 날, 혹은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 어느 쪽이든 지는 벚꽃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아니 처연해서 아름답다." P.187
"술꾼들의 내밀한 욕망인가, 어리석음인가. 숙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장을 한다. 그런데 해장은 반드시 술을 부른다. 하여 숙취에 숙취를 더한다." P.188
"그날 나는 다정에 대한 오랜 갈급함을 버렸다. 다정한 사람도 무심한 사람도 표현을 잘하는 사람도 못 하는 사람도 다 괜찮다. 각기 다른 한계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니까." P.199
"그들과 우리는, 그러니까 그냥 우리는, 그날 알코올의 힘을 빌려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거나 잠시 우주의 일부가 되는 경이를 경험했다. 새로운 별들이 떠오르고, 달이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고, 술이 천천히 우리의 혈관을 데우고, 모닥불은 사위고, 그렇게 초원의 밤이 깊어갔다." P.208
"영화든 소설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그 이야기를 보여주면 되니까." P.238
"할머니의 마음에는 무엇이 얹혀 있었던 것일까? 소화제인 술이 늘 필요했을만큼 무언가가 얹혀 있긴 했을 것이다." P.240
"하늘이 고우면 고와서, 바람이 스산하면 스산해서, 노골노골 땅이 녹는 초봄에는 마음이 노골노골해서, 비가 한줄금 긋고 지나가면 맘이 괜시리 착잡해서, 마신다." P.280
요상한엘리
이름은 천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글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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