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어워드라는 주제는 올 한 해를 자연스레 돌아보도록 했다. 되짚어보니, 올해는 나에게 코로나 이후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첫 해로 기억될 듯 했다. 나는 그간의 갈증을 해소하듯 올해 4개국을 여행했다. 이번 해의 굵직한 기억은 대부분 여행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만의 2023 여행 어워드를 개최해 보았다.
최우수 풍경상, 스위스 마테호른!
스위스 여행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을 때 가장 먼저 한 생각이 '아 미루지 말고 스위스 갈걸!' 이었으니까. 그래서 올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스위스로 떠났다.
사실 마테호른에 별 기대는 없었다. 스위스 여행을 계획하며 주로 기대한 건 기차에서 바라보는 마을 풍경이나 튠호수에서의 수영, 그린델발트와 피르스트 정도였으니까.
마테호른 봉우리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던데, 체르마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날이 개어 운 좋게도 우리는 마테호른을 봉우리까지 전부 볼 수 있었다.
역시는 역시구나. 나는 그 장관을 보자마자 탄성과 함께 눈물을 왈칵 쏟았다. 좋다 멋지다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그 때의 감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그 순간 찍은 영상을 캡쳐해 큰 액자로 만들어 걸어두었다.
최우수 친절상, 두바이 소녀!
두바이는 그간 방문했던 더운 나라들을 모두 제치고 최고의 뜨거움상에 선정해도 될만한 곳이었다. 대개 더운 지역이라 해도 바닷물은 어느 정도 시원하기 마련인데 두바이 마리나 해변의 바다는 목욕탕의 온탕처럼 뜨거웠다. 햇빛이 아프게 느껴져서 해변에 있을 수도, 물이 뜨거워서 바다에 있을 수도 없었다. 닿으면 화상을 입을 것 같이 달궈진 모래 때문에 맨발로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해변에 나간지 10분만에 항복을 외친 뒤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장은 코인을 넣으면 2분 동안 물이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그 물조차도 뜨거워서 아뜨, 아뜨를 외치며 초스피드로 머리를 감고 모래를 씻어냈다. 샤워실을 나와 화장실 세면대에서 못다한 세수를 하려고 얼굴에 비누칠을 하고 손에 물을 받았는데 그 물조차 너무 뜨거워 감히 얼굴에 갖다대기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나는 거품으로 따가워지는 눈을 꽉 감고 두 손에 든 물을 후후 불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식히려고.
그런데 어느 순간, 믿을 수 없이 시원한 청량감이 손바닥에서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손에 찬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그 은인은 바로 화장실 청소를 하던 소녀였다. 본인이 마실 생수를 기꺼이 내게 부어준 것이었다.
나는 연신 땡큐를 외치며 안전하게 세수를 마쳤다. 모든 정돈을 끝냈을 때 그녀는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It's hot, right? 하며 빙긋 웃던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최우수 야경상, 싱가포르 슈퍼트리쇼!
싱가포르는 가족여행으로 갔다. 여행 경험이 가장 많은 내가 가이드 역할을 했다. 나라가 원체 작고 대부분 그랩으로 이동할 수 있어서 가이드 역할을 하기에 수월한 곳이었다.
배를 타며 유유자적 둘러본 야경도 아름답고 마리나베이샌즈 정면에서 바라본 분수쇼도 아름다웠지만 최우수 야경상으로 슈퍼트리쇼를 꼽은 이유는 개인적인 뿌듯함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 회심의 아이템은 돗자리였다. 나는 여행 내내 돗자리를 숨기고 다니다가 쇼 시간에 맞춰 슈퍼트리 그로브에 가족을 데려간 뒤 짠 하고 돗자리를 꺼냈다. 역시나 가족들은 내 센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돗자리에 등을 대고 나란히 누워 새카만 밤하늘과 거대한 트리들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옛 팝송에 맞춰 불꽃이 터지듯 화려하게 춤추는 슈퍼트리쇼를 관람했다. 그 순간은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꿈결처럼 느껴진다.
2023 여행 어워드 영예의 대상, 태국 끄라비!
해외로 떠날 수 있는 상황이 되자마자 스위스도 2순위로 제쳐두고 허겁지겁 방문한 곳은 바로 태국이었다. 휴양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동남아는, 그 중에서도 태국은 천국 그 이상의 나라다.
이번엔 끄라비에서 3주를 머물렀다. 나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동네에서의 루틴을 만드는 여행을 선호한다.
그래서 3주 동안 한 일이라곤 아침 먹고 카페 가고 점심 먹고 수영 하고 저녁 먹고 썬셋 보고 야시장 가고 해산물에 맥주 마시고 노점에서 과일 사와서 숙소 발코니에 앉아 수다를 떨며 먹다 자는 것 뿐이었다.
매일의 고민이라곤 오늘 후식으로 로띠를 먹을까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뿐이었던 나날들. 꼬록꼬하의 아름다운 산호와 화려한 물고기들 사이에서 인어가 된 기분으로 스노클링 하던 순간과, 형광색 꽃남방을 입고 묵직한 과일쉐이크에 빨대를 꽂고서 기념품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거닐다 사소한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던 시간이 지금도 아련하게 그립다.
출국을 하지 못 했던 동안 눈물나게 원했던 순간들을 원없이 다시 누리게 해준 끄라비. 역시나 대상은 명불허전 태국이 가져갈 수 밖에.
민파도
도파민 디톡스를 시작해보자
댓글 4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