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칸아, 안녕
파초청녀23. 12. 16 · 읽음 111

 아주 즉흥적으로 틔운에서 크던 모든 식물을 정리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무심코 바라본 틔운 속 루꼴라가 키가 너무 커서 천장에 닿는 모습을 보며 더이상은 방치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루꼴라를 다 수확하니 한바구니가 나왔다. 무턱대고 키위드레싱소스를 듬뿍얹어 밥먹을때 반찬겸 먹는데 그 애매한 맛과 알싸한 끝맛이 끝내 적응이 안되었다. 2/3정도를 먹었을까. 결국 백기를 들고 버렸다. 쌈추와 상추는 몇번의 거한 수확에 이미 잔챙이들만 남아있던 상태라 바로 처리가 가능했고 겨자채도 그 전에 수확해서 해물탕에 다 넣어 먹어서 조금 남은 녀석들만 수확하고 초록별로 보내주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나니 틔운이 그렇게 휑할 수가 없었다. 한달 넘게 키워봤으니 조금 쉬어볼까 하다가 문득, 상추를 키워보고 싶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상추만 키워보고 싶었다. 나에게는 두세트의 씨앗키트와 비타민,청경채 씨앗이 있었지만 평소 즐겨 먹지 않는 식물을 키워서 버리느니 딸이 좋아하고 가족이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상추를 키우는게 틔운과 내가 오래 오래 같이 할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다이소 가는길에 상추씨앗을 사다달라고. 

 

상추와 겨자채를 정리 한 후의 사진. 다 정리한 후에는 뭔가 조금 허망한 마음이 들어 사진까지 남기지는 못했다. 

 

남편이 씨앗을 사왔고 저번에 말한대로 이번에는 한 구멍에 2-3개의 씨앗을 뿌렸다. 살짝 불안했다. 다이소 씨앗도 잘 발아 하려나..괜히 씨앗키트만 버리는건 아닌가.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게 3-4일 후에 바로 싹이 났고 지금 아주 잘 크고 있다. 물론 생각보다 성장이 좀 더딘것 같긴한데 .. 재촉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려 한다.

 


첫 시작부터 끝까지(재배완료) 한 싸이클을 돌아서일까, 요새는 진짜 틔운과 내가 얼마나 같이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겨울이란 계절이기에 베란다에서 뭘 키우는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틔운만큼 최적화된 가전도 없을것인데.. 요새 식집사 권태기가 와서 그런지..그냥..그냥..회의적인 감정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초록초록한 생명체들을 보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싱그러워지는건 식집사의 본능이 아직 몸 곳곳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이겠지.

 

갑자기 날이 많이 추워졌다. 요 며칠 이어지던 따뜻한 날씨와 쨍쨍한 햇볕에 내놓았던 반데라들을 다시 집안으로 들여야겠다.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다. 혹은 환기 시킬만한 무언가가. 결국 이 추운 계절이 지나고 따뜻해져서 또 다시 맘껏 식물을 파종하고 발아시킬 수 있어야 근본적인 해결이 되겠지만.

 

한쪽은 적상추. 다른쪽은 청상추. 틔운에서 샀던 청치마상추는 만족할만큼 크게 안자라던데 이 녀석들은 마트에서 파는것처럼 자랄 수 있으려나. 기대를 해본다. 이로서 틔운 상칸은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상칸아 안녕, 혹여 나중에 내가 그 어떤걸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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