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mm 남짓의 샌들에 신은 레이스 양말을 물웅덩이에 첨벙첨벙 적시고 걸음마다 우산 꼭지를 땅에 통통 질질 끌면서 친구들과 하교하던 시절이었다. 5층짜리 명곡아파트 3-4 라인의 열 집 모두 서로를 알고 지냈다. 403호로 심부름도 가고, 띵동- 해서 나가보면 104호 아주머니가 접시에 뭔가를 들고 계시기도 하고 그런 식이었다.
1층부터 5층까지 고만고만한 어린이들은 소방차 노래(동요 아니고. 당대 최고의 남성 3인조 댄스그룹 소방차. 어젯밤에 난 니가 싫어졌어)를 부르며 계단을 우르르 내려가 함께 놀았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연두색 둘리바를 사먹고 꽃사과를 찧어다 소꿉놀이도 하고 통로 앞에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노래를 하며 고무줄놀이도 하고 어느 집에 모여앉아 후레쉬맨 비디오도 보았다. 나는 ‘옐로’ 역할을 맡았다. (아무래도 핑크는 너무 ‘여자 1호’ 느낌이잖은가. 어쩐지 너무 전형적인 건 별로였다. 옐로는 뭐 다르냐고 묻지 말자.)
303호 어린이였던 나는 204호와 404호에 사는 동갑내기 여자아이들 집에도 자주 놀러다녔는데, 404호에는 이층침대도 있고 바비인형도 몇 개나 있었다. 친구들이 맘에 드는 바비를 고를 때 나는 늘 딱 하나 있던 ‘수지’를 고르는 아이였다. 인형의 주인인 404호 친구가 가위로 머리카락을 삐죽빼죽 잘라놓고 몸에 싸인펜 자국도 있어서 아무도 고르지 않는 그 수지가 내 눈엔 제일 예뻤다. 바비는 화려하지만 너무 미끈하고 느끼한 반면 수지는 어딘가 고운 구석이 있었달까. 어차피 아무도 탐내지 않는 인형이라 주인 친구에게 허락을 구하곤 그 집에 놀러갈 때마다 조금씩 다듬어 주었다. 가위로 머리카락도 다듬고 로션을 발라 싸인펜 자국도 지워서 예쁜 원피스를 입혔는데, 소중하게 다루며 점점 예뻐지자 “우리 바꿔서 갖고 놀자.” 하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어차피 ‘갖는 것’이 관심사가 아니었으니 쉽게 바꿔주고, 나는 또 그 바비의 머리를 다르게 땋는 데 골몰했다가 다시 수지를 돌려받곤 했다.
시간을 입으며 백화된 토분에 비대칭으로 야금야금 잎을 내며 자라고 있는 오렌지자스민을 보니 두 오렌지자스민 중에 이 녀석을 고르던 날이 생각났다. 하나는 가지가 고르게 퍼져 어느 쪽에서 보아도 수형이 고른 녀석이었고, 다른 하나가 그 때 이미 한쪽이 더 많이 뻗어서 앞으로도 위로보다는 옆으로 퍼지면서 자랄 듯 한데 나중에 어떻게 쳐내야 할지 두고 보자 싶은 요 녀석이었다.
나는 이미 완전한 것보다 살피면서 함께 변해갈 여지가 있는 것에 더 매력을 느끼는 걸까, 생각하며 작아도 향기가 진한 꽃과 함께 80년대까지 다녀온 오늘.
북글엄
북 치고 글 쓰는 엄마, 북글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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