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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의 꽃을 받았어요
은후23. 12. 27 · 읽음 324

바야흐로 신춘문예 시즌이 거의 끝나갑니다. 아직 몇 군데 1월에 마감하는 곳도 있습니다만 아주 적습니다.

1월 초에 당선발표를 앞두고 있는 곳이 대부분일 겁니다. 사실, 발표만 그럴 뿐이지 개별적인 연락으로 당선된 당선자는 이미 알고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어떻게 그걸 아는지 궁금하시다구요?

 

오랜 시간동안 저는 작가란 꿈을 꾸었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시인을 꿈꾸었고 중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동시와 시가 제게서 멀어졌습니다. 현실이란 장벽은 참으로 단단하고 거칠어서 연약하기 그지없는 손톱으로는 무너뜨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저는 초등학교 때에 베토벤이  누군지도 엘리제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면서 엘리제를 위하여 종소리를 듣고 훌쩍거렸습니다. 담임인 J 선생님은 앞뒤를 살펴보지도 않고 그 당시 짝꿍이던 Mk를 혼내고 벌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해서 사고라곤 칠 줄 모르는 소녀였던 저를 믿으신 게지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짝꿍이었습니다. 자기 변호를 일언반구 않은 채 혼나고 복도로 나가 두 손을 오랫동안 올리고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정정하겠습니다. 바보 같은 사람은 저였습니다. 내성적이어서 그에게 또 선생님께 이실직고하지 않고 훌쩍거리기만 했으니까요. 왜 음악이 슬펐다고 말을 못하고 딸꾹질만 해댔을까요.  

 

십 년 후에 만난 동창 모임에서 그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그는 기억도 하지 못하다가 제가 그 상황을 읊어주니까 겨우 꺼낸 말이 그때 절 좋아했는데 고백을 못한 쑥맥이었다는군요.

 

오랫동안 꿈은 작가였지만, 노력은 하지 않았고, 루트도 몰랐고, 알려는 시도조차 엄두를 못냈습니다. 왜냐구요?

감성적인 저는 감성과는 너무 갭이 큰 금융회사에 몸담고 있으니까요. 초창기엔 참 여유가 넘치던 삶이 어느 순간 각박해지더니 워라벨은 개나 주는 현상으로 돌변했습니다.

 

별 보고 출근하고 달이 휘영청 밝을 때쯤 퇴근하다 못해 주말은 워크숍, 자기 계발이란 명목으로 자기 혹사를 시키며 제 시간을 회사가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부했더니 인사상 불이익이 알음알음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계발대신 개발을 하려 애를 썼지만, 이도 저도 아닌 이리저리 치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들삼재, 눌삼재, 날삼재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삼재를 혹독하고 아프게 치렀습니다. 어찌나 매섭던지 열심히 돈 들여 불린 체중이 41킬로미터라는 경이롭다 못해 있을 수도 없는 몸무게를 기록했습니다.  기사회생 혹은 고진감래 아니면 전화위복이랄까요. 자아 성찰을 하다 못해 연쇄살인적인 일들이 소강되고 나서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참 무식하게도 작가나 시인이 되려면 신춘문예만 되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독자 보다 작가가 많아진 세상,

사람 보다 인공지능이 예술을 논하는 낯선 세상에서 사람 보다 지니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에 시와 동화로 등단하고 나서 저는 미친 듯이 글을 제 안에서 퍼냈습니다. 근 이 년간 매일 퍼냈더니 글이 꽤 모였습니다. 저는 올해 창작기금을 받아 뜻하지 않게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두 번째 시집을 한여름에 인공 바람이 싫어 바람없이 퇴고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에너지가 소진됐는지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신춘문예 공모가 자꾸 올라옵니다. 지어놓은 시는 허접하고 응모는 하고 싶습니다. 복권을 사지도 않고 당첨을 꿈꿀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써야 합니다. 그렇게 저는 시 10편을 지었습니다. 5편씩 두 군데 신춘문예에 응모를 하기 위해 출력을 하고 인적사항을 입력한 페이지를 앞이나 뒤에 배치하고 우체국으로 갑니다. 신춘문예는 특이하게도 디지털인 이메일로 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봉투에 넣어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 시 부문이라고 빨간 볼펜으로 적은 다음 등기로 보냈니다.

 

되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 응모했지만, 아직은 미흡하다는 걸 압니다. 그래도 되고 싶은 열망은 가져볼 수 있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응모한 시의 제목을 묻습니다. 저는 응모한 시 5편을 답변합니다. 신문사였습니다.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열망이 신문사에 닿았나 봅니다. 저는 신춘문예에 가장 먼저 발표된 신문사에서 입상했다는 개별적인 전화를 받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에 산타로부터 물건이 아닌 형태가 없는 아니죠. 형태는 곧 있겠군요.

현재까지는 형태가 없는 근사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신춘문예의 꽃, 입상이라는 긁은 복권으로 당첨을 산타로부터 전해 받았습니다. 단연코 이 상은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을 그리고 가슴이 뛰는 뜨거운 상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달님, 하나님, 부처님, 조상님, 그리고 나의 하늘선물님과 저를 응원해 주는 가족들, 친척들, 그리고 이웃들, 선생님들, 그리고 동료들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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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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