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그녀는 다 죽어가는 식물을 들고 식물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알로카시아 프뤼덱(Alocasia frydek)이었습니다. 식물은 말라버린 잎 두 장과 새 잎 한 장을 겨우 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는 언니한테 선물로 받았는데 처음에는 잎이 풍성했거든요.”
목대가 굵은 것을 보니, 전 주인이 제법 튼튼하게 키운 듯했습니다. 대략 열 장의 잎이 나온 흔적이 있었습니다. 유묘 때부터 키웠다면 적어도 1년은 되어야 나올 수 있는 잎의 수였습니다.
“처음에는 큰 잎이 세 장 정도 있었는데, 새 잎 한 장이 나오면 그 전 잎이 시들더라고요.”
잎을 살펴보니 응애가 창궐했습니다. 응애는 식물의 잎이나 줄기에 있는 세포액을 빨아먹는 해충입니다. 응애가 있던 자리는 잎이 노랗게 변합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잎 한 장에도 응애가 있었습니다. 먼저 나온 잎이 새로 나온 잎에게 응애를 물려주고 죽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과감하게 처방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가위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명탐정 코난처럼 말했지요.
“당신은 응애와 잎 한 장을 키우고 있었군요. 아예 남은 잎 한 장도 잘라버리세요.”
“아…?”
“응애는 해충약으로 방제가 가능하지만, 아주 질긴 녀석입니다. 잎이 하나밖에 없으니 차라리 깔끔하게 자르고 새로 시작합시다. 알로카시아는 일종의 구근식물이기 때문에 잎이 없어도 습도를 높여서 키우면 다시 새 잎을 낼 수 있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는 아깝다는듯 남은 잎 한 장을 잘라냈습니다. 그다음으로 뿌리를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뿌리는 식물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괜찮으시다면, 화분을 엎어서 뿌리를 한번 보고싶습니다만….”
“네. 괜찮아요.”
알로카시아의 화분을 뒤집어 흙을 쏟아내려는 순간, 흙보다 먼저 힘 없이 ‘쏙’ 빠져나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줄기였습니다. 심지어 줄기에 붙은 잔뿌리는 전부 녹은 상태였지요. 줄기는 마치 몽둥이처럼 깔끔했습니다.
알로카시아가 잘 죽는 이유 중 첫 번째가 응애 피해라면, 두 번째는 과습입니다. 그녀의 알로카시아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흘러내린 안경을 추어올리며 말했습니다.
“음…. 이제야 모든 것이 분명해졌군요. 의뢰인께서 가져온 이 알로카시아는 1차로 응애 피해를 입으면서 잎이 시들어갔습니다. 잎이 병 들자 잎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지요. 결국 잎은 한 장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잎 한 장마저도 응애를 물려받았으니, 제대로 광합성을 못했을 테고요.”
저는 이어서 그녀의 알로카시아가 죽음을 눈앞에 둔 두 번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식물은 잎의 수가 적으면 광합성과 증산작용을 덜 하게 됩니다. 그러면 잎에서도 물이 덜 증발하게 되고 뿌리도 물을 덜 흡수하겠지요? 결국 화분 속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물이 담기는 꼴이 됩니다. 화분 속의 물이 많아지는 것, 이것을 우리는 ‘과습’이라고 부릅니다! 알로카시아는 유난히 잔뿌리가 많아서, 과습에 잘 노출되어 있어요. 그래서 잔뿌리가 많은 식물일수록 화분에 공기가 더 잘 통해야 합니다. 자, 결론을 냅시다. 알로카시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범인은 바로… 응애와 과습입니다!”
그녀는 난감한 듯 물었습니다.
“명탐정 코난님…. 아니, 아피스토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처음 키웠던 알로카시아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
자, 들어보시죠. 제가 처음 키운 알로카시아는, 알로카시아 핑크 드래곤(Alocasia lowii ‘Morocco’)이었습니다. 키운 지 4년이 넘다보니 제법 대품의 위용을 자랑했지요. 핑크 드래곤은 이름대로 핑크빛 줄기에 용의 거친 등껍질 같은 잎을 펴내는 매력적인 식물입니다. 저는 핑크 드래곤 외에도 여러 알로카시아를 키웠지만, 용케도 이 친구만 한 번의 부침도 없이 잘살고 있어요.
저도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토분에 비밀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핑크 드래곤을 심은 토분은 농사를 짓는 지인의 텃밭에서 굴러다니던 ‘막토분’이었거든요. 형태는 투박하고 질감은 거칠지만 통기성만큼은 뛰어났던 겁니다. 낮은 온도에서 구운 전형적인 저화도 토분이었던 것이지요. 저화도 토분은 내구성은 떨어지지만 다른 화분에 비해 물이 빨리 마르는 장점이 있습니다. 화분이 숨을 잘 쉰다는 반증입니다.
이제는 화분이 작아 보일 정도로 식물이 커졌지만 여전히 풍성한 잎을 내주고 있어요. 뿌리가 건강하다는 뜻이겠지요? 알로카시아가 겨울에 유독 몸살을 앓는 이유도 과습이 한몫합니다. 온도가 낮아지면 급격하게 성장이 더뎌지죠. 여름 때와 같은 루틴으로 물을 주다가는 화분의 물마름이 느려지면서 알로카시아의 잔뿌리들이 순식간에 녹을 수 있습니다. 뿌리가 가늘수록 흙속의 뿌리들은 서로 쉽게 엉키게 되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뿌리는 숨 쉬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흙속의 공기 흐름이 좋아야 하는 것이지요. 알로카시아는 겨울이 오면 특히 물을 적당히 ‘굶길’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반려식물 인테리어》라는 책에서 영국에 사는 사진가 제스카의 식물 다루는 법을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식물을 사랑하지만 솔직히 말해 약간 험하게 다루는 편이에요. 대부분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만 가끔 물을 줍니다. 말하자면 무시하듯 대해서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거죠. 그렇지만 제 나름으로 기억하는 성장기 때가 되면 저절로 느낌이 옵니다. 그리고 물론 식물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요.”
얼마나 긴밀한 유대감인가요? 그녀는 아마도 식물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 겁니다.
식물 물 줘.
식집사 (차분하게 타이르듯) 조금만 기다려.
식물 (다급하게) 빨리 줘.
식집사 조금만 기다리라니까.
식물 (협박조로) 지금 물 안 주면 나 죽는다.
식집사 알았어.
식물 (뜸 들이는 식집사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
식집사 내일 꼭 줄게.
식물 (부글부글)
이렇게 식물과 밀당을 하면서 물주기의 타이밍을 찾아낸다면, 그 어떤 매뉴얼도 필요없을 겁니다.
식물방을 찾아온 그녀는 몽둥이만 남은 알로카시아 화분을 두손으로 받쳐 들고 일어섰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키워볼게요.”
“네. 식물과의 밀당이 관심의 시작입니다. 건승을 빕니다.”
- 아피스토, <처음식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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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아피스토TV> 운영. 2011년 <시와시학> 시 등단. 지은책 <톰 웨이츠>, 그린책 <글로스터의 홈가드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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