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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 같은 금어초 새싹
구이일24. 01. 02 · 읽음 114

금어초의 새싹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애인이었다.

새해를 맞아 떡국을 두둑이 먹고 식탁에서 일어나는데, 부엌 선반에 올려둔 지피펠렛이 그의 눈에 든모양이다.

호들갑을 떨며 부르길래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지피펠렛 위에 실오라기처럼 얇은 싹이 하나씩 돋아 있었다.

아마 나라면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법한 째깐한 새싹이다.

 

새해를 기다렸나봐, 애인이 즐거워하며 말했다.

2023년에 심은 금어초는 2024년에 싹을 틔웠다. 씨앗이 날아갈까 숨을 참아가며 씨앗을 심은지 장장 11일 만의 일이다. 금어초는 기다렸다는 듯이 짠! 하고, 멋지게 등장했다.

 

얇기가 마치 속눈썹같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지피펠렛 열 개 중에 다섯개에서 속눈썹처럼 얇은 싹을 찾을 수 있다.

싹이 나니 물을 더 찾는 건지, 집안 습도가 비슷한데도 증발이 빨라진 것 같다. 하루지나 물을 채워주려고 보니 그릇이 거의 말라있었다. 하마터면 싹을 틔우자마자 말려 죽일뻔했다.

 

'살아 남는 놈만 키운다'가 우리 집 식물 생활의 기조이다보니 몬스테라나 홍콩야자처럼 정말 강한 놈들만 살아 남았다. 거칠게 큰 식물들만 보다가 간만에 이렇게 가녀린 싹을 보니 걱정이 앞선다. 마치 장성한 언니들 사이 막냇동생 같다. 막내답게 어화둥둥 얼러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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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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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도시 농부이자 글쓰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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