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가 부족하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한편으로는 늘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하던 공부나 읽던 책이 도통 끝나지 않았던 건 다 거기서 비롯된 거겠지. 끝내버리면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아주 잘 알았으니까.
이게 끝나고 막상 시작하려고 할 때 탐구가 끝났음에도 내 머릿속에서 뚜렷한 방향이나 길이 제시되지 않을 것을 항상 염려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초반이나 중간까지만 사력을 다해하고 혹 끝까지 가더라도 그럴 때는 건성으로 쉭 보고 끝냈던 것이다. 그리고 반쪽짜리 지식이라고 더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사로잡혀 있었다.
아예 아무것도 차지 않은 게 아니다. 조금만 더 채우면 된다.
하나도 못하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는 잘한다는 이야기도 제법 들었지만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실력을 쌓아야 한다.
부족하다. 부족한데 얼마나 부족하냐면 한 조각 정도? 한 2프로 정도? 이러면서 독 바닥에는 구멍을 뚫어놓고 조금만 더 채우면 될 거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면서 물을 계속 쏟아붓는 느낌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일부러 낸 구멍으로 물이 다 빠져나가서 비어버릴 테니까 그런 갈증이었다.
그러다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 체리파이를 굽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던 한 여자의 이야기였는데 그녀는 어느 날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뭔가가 자신의 삶에 하나가 빠진 듯 공허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손님의 주문받은 체리파이 한 조각을 잘라서 꺼냈는데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친구에게 자신의 인생이 이 체리파이 같다고 이야기했다. 마치 한 조각이 빈 것처럼 뭔가 비어서 채워지지 않는다고 이 한 조각이 없어서 내 인생은 완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고 아마 그녀가 떠올린 건 빈틈없이 흠잡을 게 없는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상상했을 것 같다. 그리고 친구는 딱 한마디를 했다. 한 조각이 비었기 때문에 하트 모양으로 보여서 이쁘다,라고.
그 말을 들은 여자는 그 길로 바람을 피운 남자친구를 정리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정말로 이대로의 모습을 서로 귀하게 여기고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이전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영위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이 일들을 있는 그대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자책하고 없는 것으로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아름답고 완전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위축되거나 과소평가하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그 자체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볼 수도 있겠지.
그리고 들었던 또 다른 이야기로는 어떤 분이 자신이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글의 분량을 적어내서 출판사와 계약 선인세까지 받았지만 결국 그곳과의 계약은 파투가 났다고 했다. 그때 출판사 사장님께 계약이 안되어도 괜찮으니 이곳이 아니어도 다른 출판사에 낼 수도 있지 않냐고 어디를 고쳤으면 좋겠는지 조언을 부탁하니까 조언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왜냐면 이 글이 우리하고 맞지 않다 해도 다른 데서는 당신의 글이 결이 맞고 정말 좋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그 당시에는 그 말이 개소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브런치에라도 올려보자는 마음으로 올리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브런치에서는 그 글이 뽑혔고 대상을 받고 출간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일화를 듣고 나니 우리가 가치라고 여기던 것과 완벽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차이가 비슷한 기준이 아니고 지극히 주관적이고 유동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체동물처럼 물렁물렁해서 손으로 쥐어도 물처럼 완전히 흩어지고 흘러내려서 사라지는 건 아니고 잡히기는 잡히는데 슬라임처럼 흘러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형태가 있고 그 기준이 다 비슷하고 객관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형태가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잡히는 것 같지만 흘러내리고 언젠가는 끝날 것 같지만 끝도 없는 환상에 가까운 것.
그리고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게 정말 부족했었나, 의문이 들었다. 부족했던 건 내 마음이 안 찼던 거고 이것만 있으면 완벽한데 나한테는 이게 없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 아니었을까. 아마 그건 끝나지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상 그 하나가 채워지면 바로 또 다른 게 비었다고 너는 다 좋은데 그거 하나가 없다고 그것만 있으면 딱 완벽할 거라고 다시 속삭여올 테니까.
릴랴
자기가 쓰고싶은 글을 쓸 뿐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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